2
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마스크를 벗기 전에 /권혁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5 19:56:40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코로나19가 우리의 보통날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건 지난달 20일부터다. 이날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 대구·경북에서만 51명이 감염 판정을 받았다. 전국 확진자는 순식간에 100명을 넘었다. 대구·경북을 진앙으로 한 국내 팬데믹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포로 가득한 수천만 눈초리가 화살처럼 청도대남병원을 쏘아보던 그날, 경북 청도에 있었다. 큰어머니 시신은 사정이 있어 청도대남병원에 잠시 머물렀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를 거쳐 청도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코로나19와는 관계없는, 사람 좋은 시골 할머니에게 닥친 비통한 절명이었다.

고민 끝에 이틀 밤을 새울 요량으로 짐을 쌌다. 사람의 도리는 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차를 몰았다. 빈소는 고요하고 쓸쓸했다. 친족 외 찾는 이도 없었다. 슬픔만 무겁게 깔렸다. 난리가 벌어진 한가운데 빈소를 차릴 수밖에 없었던 상주는 말이 없다. 죄인처럼 문상객을 맞았다. 조문을 위해 마스크를 벗으려 했다. 마스크로 향하는 손을 사촌 형이 붙잡았다. 상주의 눈은 입을 대신해 말했다.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된다.” 조문이 끝나자마자 상주가 등을 떼밀었다. “괜히 네가 곤란해진다. 어머니도 다 이해하실 거다.” 황망하게 빈소를 빠져나왔다. 씁쓸하고 낯설었다.

소문은 바이러스보다 빨랐다. 또 바이러스처럼 ‘변종’을 낳았다. 빈소엔 청도대남병원을 방문했거나, 코로나19 확진자 동선과 겹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청도를 다녀온 하루 뒤 ‘청도대남병원에 갔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낙인이 찍혔다. 걱정을 핑계로 감염 사실을 확인하려는 연락이 제법 왔다.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다. 휴가를 내고 스스로 격리했다.

자가 격리 기간 모든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자잘한 생필품도 클릭 몇 번으로 채웠다. 대문엔 ‘수고 많으십니다. 문 앞에 그냥 놓고 가주세요’라고 쓴 쪽지를 붙였다. 사회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꽤 오래 계속됐다. 이런 낯선 상황은 평소 익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했다.

사회와 멀어진 거리는 플랫폼 노동자가 대신 이어줬다. 발광하는 바이러스를 박멸하려 비워둔 공간에서, 그들은 타인의 생존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사무실에 다닥다닥 붙어 일하면서, 역설적으로 고객의 사회적 거리를 지켜준 콜센터 노동자도 있다. 바이러스는 이처럼 사회적 거리 사이에 낀 약자를 잔인하게 공격했다. 이들은 살인적 노동에 죽음을 맞거나,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됐다.

하루라도 폐지를 줍지 않으면 물 한 병, 빵 한 조각 사 먹기 어려운 빈곤 어르신들도 사회적 거리 사이로 불려 나온다. 무료급식소에서 나눠주던 밥도 끊긴 지 오래다. 바이러스는 최후방 복지마저 집어삼켰다.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의 품격 따위는 없다. 난민 신청자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는 자신을 지킬 ‘자격’도 박탈당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제공할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사회적 거리를 위해 시행된 개학 연기는 비정규직 강사의 열악한 처지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드러냈다. ‘긴급 돌봄’으로는 도저히 육아의 빈자리를 메울 수 없는 노동자도 많다. 며칠의 무급 휴업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일용직 가장도 셀 수 없다.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지기 시작하고서야 약자의 삶이 보인다. 바이러스마저 빈부와 지위를 차별하는 놀라운 사실도 깨닫는다. 재난이 이들 약자의 삶을 세상에 들춰내기 전까지, 누군가에겐 그저 익숙한 일상으로 여겨졌던 상황일 테다.

아무튼, 국난 극복이 특기인 우리 국민은 이 지독한 바이러스를 결국 이겨낼 거다.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을 날도 올 거다. 그러면 이 낯설어진 풍경이 또다시 익숙하고 예사로워질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마스크를 벗기 전에 이들 약자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 다시 돌아갈 일상이 예전과 똑같다면, 재난 끝에 얻을 성찰도 없다.

기획탐사부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4. 4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5. 5“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3. 3‘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