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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지금 미술순례를 해야 하는 이유 /배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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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6 19:37:4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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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갤러리에서 창밖으로 바라본 수영강변의 풍경은 영락없는 봄, 그 자체다. 그러나 감기가 유행하는 철에나 어울릴법한 마스크를 너나 할 것 없이 착용한 채 산책하는 사람들은 그들 곁에 다가선 봄이 더 이상 생동감 넘치는 봄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파장이 몰고 온 시련은 그 끝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위기감과 불안감, 무엇보다도 고립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갤러리 전시장을 감쌌던 온화한 고요는 불과 몇 달 사이에 황량한 적막감으로 변했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직전에 시작된 특별 기획전시는 전달할 메시지만 가득 품은 채 대화 상대를 속절없이 기다릴 뿐이다. 부산 출신인 두 여성작가의 삶과 시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표현된 설치작품들이 누군가와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누구든지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면 미술작품 감상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힘든 시기일수록 작가들이 펼쳐놓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는 암울했던 가족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1980년대 초반 유럽여행을 무작정 떠났다. 거기서 만난 미술작품들을 통해 엄청난 치유의 과정을 경험했다. 그에게 말을 걸어온 미술작품들과 교감하고 대화하면서 가슴속 단단한 응어리를 풀어냈다. 그리하여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서 인생의 또 다른 긴 여정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의 미술기행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매우 다르다. 명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도대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작품 앞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사색 시간을 무턱대고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강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누구에게는 가슴 사무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듯이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맞닿은 작품을 발견하면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받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파장이 너무 커서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기나긴 여운으로 남아 평생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비록 반 고흐와 같이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살다 간 화가가 아니더라도, 작가들이 견뎌낸 치열한 삶의 흔적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미 세상을 저버린 작가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의 작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결코 우리의 고단한 삶과 다를 것이 없는 작가들의 삶이 녹아내린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춘 우리는 내 삶의 대변자를 만나게 되고 나 자신과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인생에서 묵묵히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는 우리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서경식 교수가 자신의 책 제목을 미술 ‘감상’이라 하지 않고 굳이 미술 ‘순례’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순례의 길에는 거창한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검소함과 담담함 그리고 간절함만이 모든 걸 내려놓은 자신과 함께 한다. 순례자의 자세로 삶을 산다면 일상에서 우연하게라도 눈에 띄는 보잘것없는 들꽃 하나에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만 해도 안개 속인데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서로 질세라 별로 반갑지 않은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갑자기 닥친 불운의 시간은 멘털이 얼마나 강해야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지, 마치 사람들을 시험하는 듯하다. 더욱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 던져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현실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다가 연대감마저 잃게 될까봐 두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또 다른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나마 안심이 되고 실낱같은 희망도 보인다.

나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자신만의 ‘인생작품’을 찾아 미술 ‘순례’에 나서는 일도 의미 있고 귀한 선택이 될 것이라 믿는다. 힘든 시기에 용기와 귀한 시간을 내어 갤러리를 방문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더 많이 미술순례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더 바람이 있다면 갤러리의 안과 밖이 모두 순례의 장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삶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깨어있으되 묵묵히 그 길을 정진했으면 한다.

갤러리이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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