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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6 19:46:3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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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짧고 의술은 길며,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실험은 부정확하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가 맡은 일을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자와 그를 돌보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며, 주위 환경 또한 호의적이어야 한다.”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그림 서상균
이 경구의 첫 문장만 따와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뜻으로 와전되기도 했던 유명한 말이다. 첫 문장은 사람의 목숨은 언제 죽을지 모를 만큼 짧은데, 의술이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이다. 그 반대였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역으로 비추고 있다. 나머지 문장들 역시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하던 때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전염병 확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오늘 우리 현실에 대한 거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서구 의학사에서 처음으로 일정한 지역과 집단에 한정된 풍토병(en-demic)과 사람 사이에 넓게 전염되는 유행병(epi-demic)을 구분했다. 이는 ‘사람들 안에’ 또는 ‘사람들을 넘어서’라는 두 술어의 어원적 의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독감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병들도 깊이 연구했다.

다시 그의 말을 곱씹어 보자. 기회는 달아나기 쉽다. 코로나19처럼 확산세가 강한 전염병의 대처는 적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병의 확산은 불가피해진다. 이에는 환자의 격리 및 감염이 확산된 일정 지역의 출입 통제뿐만 아니라, 의료품의 수급을 조절하는 시점 등도 포함된다. 이에 더해 방역의 억제 정책과 완화 정책을 언제 선택하고 실시할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이다.

실험은 부정확하다. 모든 과학적 행위는 완벽을 지향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 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결과물을 일상적 삶에 적용할 때는 부정확성이 더욱 논란이 된다.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정확도 논쟁이 있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 번 바이러스 음성 반응을 보였다가도 양성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방역 당국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험의 부정확성은 안전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것을 개발하는 의학자들은 과학적 행위에 내재하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판단은 어렵다. 사실 우리 삶에서 모든 판단이 쉽지 않다. 더구나 전염병이 번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개별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수적 증가를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의료진의 총괄적 판단은 어렵다. 방역 당국의 행정적 판단 및 정부의 정책적 판단도 쉽지 않다. 이때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에 대한 비판과 성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언론은 그 성격상 비판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지만, 비판의 내용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성원하는 방법이다.

이제 히포크라테스는 원론에서 각론으로 들어간다. 의사는 당연히 맡은 바를 다 해야 한다. 환자의 진단과 치료 그리고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을 다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한 의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의료 행위 자체가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는 그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음을 경고한다. 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협동의 주체는 우선 환자 개인이다. 환자도 자신의 몫을 다 해야 한다. 환자는 의사의 모든 행위에 협조해야 한다. 그를 돌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돌보는 사람’이란 전문화된 간호 인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족, 친·인척, 이웃 등 공동체에서 환자와 가까이 있는 사람 모두의 협조를 뜻한다. 코로나19의 경우에는 시민이 방역의 모든 공식적 수칙을 따르는 것이 협동의 구체적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주위 환경도 호의적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자연적인 요건이 기본이다. 날씨와 기상 상황이 호의적이어야 한다. 한 나라의 기본적 위생 수준과 의료 시스템도 사회문화적 환경 요소가 된다. 고대 그리스 사람이었던 히포크라테스는 세계화를 경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시대에는 팬데믹(pandemic)이란 말처럼 유행병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번질 수 있으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먼 나라의 상황도 우리에게 곧바로 주위 환경이 되어버린다. 그쪽 상황이 지금 좋지 않다.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2월 1일 자 독일 ‘슈피겔’지 표지는 중국의 반발을 크게 샀다. ‘코로나 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두 줄짜리 문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사람들이 하나 놓친 것이 있었다. 세 번째 줄에 쓰여 있던 “세계화가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면”이라는 문장이다. 세계화는 먼 나라 이웃 나라 가리지 않는다. 이 점에 주목했다면 감정적 반발에 앞서 모든 나라가 좀 더 냉철하게 합리적인 대처를 했을 수도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은 오늘 우리에게 합리적 성찰과 대처를 위한 거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지 3개월째다. 잘 대처한 점도 있고 잘못한 점도 있다. 실수도 있고 성과도 있다. 사람들은 이타심도 발휘하지만 이기심에 휘둘리기도 한다. 필요한 토론도 있지만 소모적 논쟁도 있다.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며 정치인들까지 집요하게 정쟁 소재로 삼는 마스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19 예방수칙에는 마스크 착용도 있지만, 기침할 때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라는 수칙도 있다. 이 둘 사이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매 순간 어떤 장소에서든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두 번째 수칙이 필요할까. 두 번째 수칙이 있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각자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면 균형 잡힌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다음 달 개학을 ‘예정’하고 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희망하며 위기 극복을 위해 각자 위치에서 자기 몫의 노력을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아이들과 청소년이 일상의 자유를 찾기 바란다. 그것은 어른의 자유이기도 하다.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말했듯 전염병이라는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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