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바이러스 한 방에 훅 갔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천지가 뒤엎어졌다. 학교 문이 굳게 닫혀 학생과 학부모들은 매일 불안 속에 보낸다. 학사 일정에 이어 수능 등 대학입시 일정도 차질을 빚을 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사 직전인 자영업자들은 속만 태운다. 다들 불가항력의 무력감에 빠졌다. 온통 마스크가 사람 얼굴을 가린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풍광마저 서러울 지경이다. 실물 경제는 몰락했고, 주식시장은 종잡을 수 없다. 위기의 경제 살리기에 100조 원의 긴급구호 자금이 살포된다는데,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세계의 물류와 인적 교류는 끊겨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부처님오신날 법회가 부처님이 태어난 날에 열리지 못하는 등 종교계는 잔뜩 움츠렸다. 기독교인들이 철석 같이 지키는 교회의 주일 예배는 궤도를 이탈했다.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석권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 영화산업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스포츠 시장은 엉망이다. 급기야 2020년 최대 이벤트인 일본 도쿄올림픽은 내년으로 연기됐다. 4년마다 어김없이 선보이던 ‘각본 없는 드라마’가 공들인 방영 시기를 날렸다. 4년간 혼신의 힘을 쏟은 선수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도 변함 없는 게 있다면 누구나 정치권의 ‘한 줌 권력 다툼’을 꼽는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선거 정국의 반(反)정치적인 구태가 매번 용인된 풍토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판이 더 문제다. 꼼수와 반칙, 위선과 가식이 힘을 더 발휘하는 곳이다. 이번에도 등장 인물만 약간 바꿨다. 각 당의 정치공학적 계산의 산물인 게임 룰이 요상하게 변한 게 다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며 추하더라도 살아남겠다는 저급한 ‘정치 철학’이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과정은 중요치 않고, 허물은 무시해도 되는 ‘결과만의 철학’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4년 전 우리나라 정치사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 4·13총선 정국이 떠오른다. 이른바 ‘정치한다’는 사람이라면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회의실 배경 막에 등장한 문구로, 야권에서도 인정할 만큼 여당의 확실한 승리가 예상됐던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끝까지 조심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그런데 대통령을 뒷배로 한 세력의 ‘제 밥그릇 챙기기’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이 문구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대통령 마케팅에 기대 기고만장하던 세력은 정말 한순간에 훅 갔다. 청와대 권력과 일부 극성 지지층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던 그들은 뒤늦게 정신 차렸는지 모르지만, 때늦은 후회와 자책이었을 뿐이다.
다시 총선이 눈앞이다. 권력을 잠시 주는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는 각 당의 선거판 짜기가 퇴행적으로 발전한 모양새다. 후보 등록 날까지 이어진 정당의 지역구 공천 파동은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없는 정당과 지역구 후보 없는 정당이 기세를 올리는 형국이 기가 막힌다. 정치꾼들의 권력 탐욕에 개정 선거법이 맞물린 결과다.
선거법 개정 작업에서 완전 소외된 제1야당은 ‘비례대표용 정당’이라는 기상천외한 수를 던졌다. 여당은 이를 ‘쓰레기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딱 그까지다. 여권에는 한 술 더 떠 두 개의 비례대표용 정당이 등장했다. 한쪽은 소수 정당 배려라는 명분을 걸었지만,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쪽은 대통령과 조국 지키기 등을 앞세운 인사들이 꾸렸다. 지역구 공천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사들이 대거 비례정당의 후보로 나섰다. 그 짧은 시간에 정당 몇 개가 뚝딱 생기는 정치판을 경이롭다고 해야 하나. 비례당의 기호와 선거 보조금을 고려한 ‘지역구 전용 정당’의 의원 꿔주기 경쟁은 후보 등록 당일까지도 벌어졌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다들 기생할 수 있는 숙주가 있는 모양이다.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한껏 기세를 올렸던 군소 정당은 지역구 전용의 양 정당 틈바구니에서 존재가치를 걱정해야 한다니 딱하다.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을 돕겠다던 새 선거법만 쓰레기가 된 꼴이다. 어쨌든 오늘 각 당의 후보 등록이 마무리되고 총선 레이스는 본격 막이 오른다. 일부 극성 세력을 겨냥한 프레임이 난무할 테다. 대부분 허상이라는 것을 유권자는 다 안다. 선택지가 마땅찮아 ‘덜 나쁜’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직은 답답할 뿐이다.
인간은 세상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를 내칠 능력이 충분히 있다. 맹목적인 지지세력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정치꾼들이 설치는 난장판을 갈아엎을 때가 됐다. 제 역할을 할 유권자 몫이다. 권력의 달콤함을 탐닉하기 위해 골수 지지층만 대상으로 실체도 모호한 구호 타령이나 하는 후보들을 한순간에 내치는 힘이다. 한 방이면 충분하다. 훅 가는 수가 있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