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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모란이 필 때쯤엔 찬란한 봄을… /김나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9 19:40:0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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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하다. 춘삼월 살랑 바람에 들뜰 틈이 없다. 코로나19가 봄을 느낄 소박한 여유마저 앗아가 버린 탓이다. 봄을 맞이하지도 못했는데 하루하루 봄날이 져 간다.

선별진료소, 개학 연기, 마스크 구매·착용,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현실에 봄맞이는 사치나 다름없다. 그 여파는 평범한 일상을 정지시키고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심에서 맞닥뜨리는 일은 비단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터.

몸살로 내과에 갔다가 문밖에서 진료를 거절당했다. 열을 재보더니 선별진료소로 가라는 거다. 상황이 상황이고 약이 필요한지라 두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잔뜩 움츠러든 채 간 선별진료소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가 바이러스 매개체일까 긴장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접수하고 기다리다 검체 채취하고, 또 기다려 가슴 사진 찍고, 휴대전화 영상으로 진료받고, 다시 기다려 결과 듣고 약 받아 나오기까지 세 시간여. 살벌하고, 춥고, 힘들었던 탓에 몸살이 되레 심하게 도졌다.

검사 후 구청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외출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긴 했으나,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메시지를 받으니 후련하긴 했다. 검사한 보람도 있었다. 특정 지역 확진자가 폭발할 때 들른 이비인후과에서 다른 환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진료받을 때, 나는 코로나가 아니라는 진단을 이미 받았던 터라 편도염 치료를 받아 회복이 빨랐다.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을 전전하던 어느 날엔 빗속에서 한 시간 줄을 서 있었다. 식량도 아닌 마스크 두 개를 사려고 줄을 선 작금의 상황이 위기감과 경각심을 동시에 주입했다. 5부제 시행 이후 압박감을 덜긴 했지만, 현 사태가 잠잠해져도 마스크를 비축해야 할 것 같은 후유증은 남을 것 같다. 돌보는 애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지 오 주째다. 종일 집에서 지내는 다섯 살, 여덟 살 형제는 마냥 심심해한다. 놀면서도 심심하단다. 태블릿피시가 구원투수다. 세상에 이보다 기특한 문명이 없다. 그제야 잠시 숨을 돌린다. 한 달째 이어지는 풍경이다. 저들도 답답하겠지만, 보호자만큼 답답하랴. 아이 부모는 부모 대로 직장에서 서로 휴가를 맞춰 보호자를 쉬게 해 줘야 한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대략 비슷한 상황일 터.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세상 편하겠지만, 직장 다니는 그 부모에겐 보통 사태가 아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는 집은 이런 비상사태가 없다. 나라에서 챙겨줘야 하는 이유다.

거리를 활보하던 일상이 그립다고들 말한다.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답답함이 크다. 텔레비전엔 코로나 소식뿐이다. 먼 산에 흐드러진 봄을 닿지 못하는 세상인 양 멀거니 바라본다. 마스크 재고를 확인하는 앱을 설치하고, 약국에서 파는 시간을 파악하는 등의 일은 그간 우리가 얼마나 평온하게 살아왔는가 일깨워준다.

애들 데리고 인근 대학교 교정에 나가니 겹벚꽃이 한창 만개했다. 백목련도 꽃잎을 활짝 펼쳤다. 점심을 먹고 오는 직장인들이 하나같이 이끌린 듯 꽃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뉴스로 뒤숭숭한 심사를 꽃 앞에서 위로받는다. 꽃을 아련히 올려다보는 뒷모습이 그래 보인다.

각자 처한 사정대로 각각 영향을 받으며 파동을 겪는 이즈음, 자꾸만 달력을 들여다본다. 과연 오월 모란꽃은 눈 맞추며 볼 수 있을까. 화중왕이라는 모란이 유독 떠오른 건, 짧디짧은 봄이 다 가기 전에 홍자색 모란꽃이라도 보며 위로받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에서일 것이다. 목련 수선화 벚꽃 진달래…. 봄을 대표하는 꽃들도 다 진 뒤, 바통을 받은 모란이 겨우내 비축한 기운을 쑥쑥 뽑아 올려 정열의 꽃을 피울 그날은 아직 감감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겠다는 시인 영랑의 간절함처럼, 모란이 필 때까지는 찬란한 봄이 기다려주기를, 저마다 방어기제를 작동해 무사히 견뎌 내어 평범했던 일상을 회복하기를.

개학은 사월로 연기됐다. 모두가 살길이니 오월을 생각하며 굳건히 견뎌보기로 한다.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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