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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코로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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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잠시 쉬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이 하늘에서 관찰한 지구의 모습이 그렇다. 도시 전체가 봉쇄됐던 중국 우한은 대기오염물질인 이산화질소(NO2) 농도가 뚝 떨어졌다. 베이징 하늘은 ‘베이징 블루’를 되찾았다. 탁하기만 하던 인도 뉴델리의 밤하늘엔 별이 뜬다. 파리 마드리드 브뤼셀의 공기도 한층 맑아졌다. 이탈리아 베니스 운하에는 물고기 떼가 돌아와 생기를 더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장이 문을 닫고, 항공 이동이 급감하고, 자동차가 멈춘 까닭이다. 인간이 코로나를 이길 백신은 아직 없지만, 인간 때문에 피폐해진 지구에겐 코로나가 백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우리도 모처럼 깨끗한 봄 하늘을 경험 중이다. 부산은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작년 이맘때의 절반이다. 최악이었던 작년 봄 먼지 농도가 기준을 8번이나 초과하고 주의보 발령일수가 16일이나 됐던데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해마다 꽃가루와 미세먼지에 재채기와 콧물로 반응하던 알레르기 환자들은 마스크 속에서나마 조금 숨을 돌리게 됐다. 손을 자주 씻어 독감도 큰 유행 없이 지나갈 모양이다. 학교로 학원으로 뱅뱅 돌던 아이들은 오랜만에 동네 놀이터에 모여 논다.

‘역설’이라는 말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자주 쓰인다. 동기가 아무리 선해도 나쁜 효과를 낼 때가 있다. 취약계층 소득을 늘려주려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더니 오히려 이들이 실직으로 내몰리는 일이 생기는 식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사망자는 늘고 의료진은 지쳐가는 비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잃어버렸던 소소한 가치가 조금씩 복원력을 갖기 시작한다.

700여 년 전 페스트는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암흑의 중세 봉건질서를 끝내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가 재정을 국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재난소득 제도를 실험 중이다. 교육현장에선 원격수업을, 직장에선 재택근무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나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어떤 부분은 옛날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이 미증유의 사태 이후 영원히 바뀔 일상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궁금해지기도 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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