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봄소식은 언제나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다. 봄철 경남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자연스레 봄의 대표선수가 된다. 1990년대 이후 통영은 수산업과 관광산업 규모에서 남해를 대표하는 항구가 되었다. 통영에서 도다리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문치가자미를 일컫는다. 심지어 문치가자미를 진짜 도다리라는 의미에서 참도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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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늦게 맛보았지만 봄내음이 여전했던 도다리쑥국. |
문치가자미는 12월에서 2월 사이 산란한다. 그래서 12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금어기로 정해놓았다. 산란기가 끝난 문치가자미는 봄이 되면 새살을 붙이기 위해 영양분이 풍부한 연안 가까이 붙는다. 어획이 시작되는 시기와 연안으로 붙는 시기가 일치하니 어획량이 늘 수밖에 없다. 잡히긴 많이 잡히는데 치어든 성어든 횟감으로 쓰기엔 살이 충분치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으려니 포를 뜨기보다는 뼈째 썰어 먹는 것이 더 어울렸다. 봄 도다리회 하면 ‘뼈째 썰기(세꼬시)’가 공식처럼 정착된 이유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로 도다리가 봄의 대표 생선이 되었다고 하면 뭔가 좀 아쉽다. 좀 더 극적인 스토리가 필요했다. 문치가자미가 올라올 즈음이면 통영에는 봄기운을 품은 해풍이 불어온다. 이때를 맞춰 통영의 크고 작은 섬의 들판에서는 마른 땅을 뚫고 봄소식을 알리는 쑥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지천으로 올라오는 문치가자미와 땅에서 지천으로 캘 수 있는 쑥의 만남. 그 자체로 극적이고 그 자체로 봄이다. 예부터 통영 사람들은 문치가자미로 끓여낸 국에 들에서 캔 야들야들한 쑥을 듬뿍 올려 봄을 누렸다.
자칫 심심할 것 같은 생선국에 봄내 가득한 쑥이 곁들여지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이 되었다.
도다리쑥국이란 명칭 때문에 이 음식의 주연이 도다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 주연은 단연 쑥이다. 봄철 쑥국 전통이 남아 있는 남해 어촌 마을을 가보면 비단 도다리뿐 아니라 삼세기, 물메기, 용가자미,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로 쑥국을 끓인다. 살이 연하고 국을 끓였을 때 맑고 담백하며 감칠맛이 뛰어난 생선이라면 무엇이든 쑥국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주연인 쑥의 부드러움과 향을 돋보이게 하는 조건이다. 아울러 산지일수록 도다리쑥국 맛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이미 다 자라 거칠어진 쑥보다는 여린 해쑥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도다리쑥국의 적기를 놓쳤다. 햇쑥의 여린 맛은 없어도 봄내음만큼은 여전했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평생 나는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봄은 짧고 봄 음식을 즐길 여유도 잠깐이다. 그러니 인간이 부지런히 자연의 시간을 쫓아야 한다. 먼 훗날 돌이켜 보면, 이맘때 먹은 도다리쑥국 한 그릇이 당신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일 수 있다.
모쪼록 당신에게 찾아 온 찬란한 봄을 잃지 않기를.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