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를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제70주년 국군의날 경축 연설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란 표현을 구사했다.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문 대통령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담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는 다르겠지만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런 표현을 현재 상황에 적용하면 아마도 ‘인류가 가지 않은 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1월 중국 우한에서 전해진 뉴스는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다. 당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쳐 우한은 봉쇄됐다. 1000만 인구 중 절반이 탈출한 우한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우한의 고립된 밤, 누군가 아파트 창문을 열어 “힘내자”고 외쳤고 그 말은 다른 주민의 입을 거쳐 메아리가 됐다. 심지어 여러 주민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뉴스와 SNS를 통해 우한의 모습을 접한 전 세계는 “영화에서 보던 모습이 현실이 됐다”고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는 우한에서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지금 상황은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영화와 같은 상황을 현실로 겪고 있다. 코로나19에 의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지 않은 길’은 이해하기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만 둘러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고립돼 있다. 개학이 연기되고, 재택근무란 이름으로 직장은 문을 닫고, 전 세계는 빗장을 걸고 교류를 중단했다. 인류가 구축했던 세계 시스템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붕괴된 것이다.
더구나 경제 주체인 사람이 경제 활동에 나서지 못하면서 전 세계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각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앞다퉈 풀고 있다.
물론 전염병은 어느 시대든 있었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부터 메르스까지 인류는 전염병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인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다르게 다가온다. 전염성이 유독 강한 이 바이러스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인류의 특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병을 퍼뜨렸다. 특히 인류가 구축한 첨단 문명으로 마을 간, 도시 간, 국가 간 물리적 장벽이 사라진 상황을 이용해 전 세계를 동시에 습격했다. 그리고 인류를 가지 않은 길로 끌고 갔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도 힘겹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 이후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뒤 인류는 가늠하기 어려운 혼란을 맞을 수 있다. 개학이 연기된 학사 일정을 조정하고 문을 닫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살려내야 한다. 사실상 인류가 구축한 시스템 대부분이 멈췄다가 다시 가동되는 셈인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매뉴얼도 없고 옆에서 도와줄 안내자도 없다.
이런 때 누군가는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상황 말이다. 바이러스를 극복하기에도 힘이 모자란 데 편한 소리 한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앞서가면서 뒤에 따라올 누군가를 위해 발자국을 남기고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좋은 예가 있다. 바이러스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 진단키트를 미리 준비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 한때 많은 나라가 한국인의 입국을 막았지만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상황만 보면 인류가 가지 않은 길의 맨 앞에 우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매뉴얼을 만들고 발자국을 남기고 이정표를 세우면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을 지칭하는 것이니 오해 말기를 바란다. 선거철이라 조심스럽다.
혹시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까 해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를 소개한다.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었다/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디지털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