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러분, 좋은 동화책 한 권도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이탈리아 작은 도시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리아(Santa Margherita, Liguria)’의 시장님 파올로 도나도니(Paolo Donadoni)는 코로나19로 집 밖에 못 나가고 친구들과 못 만나는 어린이를 위해 매일 밤 직접 SNS 영상으로 동화를 읽어주며 위와 같은 맺음말을 잊지 않는다.

동화는 삽화를 보는 재미도 있고, 짧고, 동심 이야기는 어른에게도 여운을 남긴다. 이탈리아는 최고·최다를 기록하는 상실의 숫자들과 함께 코로나19 전쟁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 작은 도시의 시장님은 시민의 근심을 함께 덜고자 오늘도 기꺼이 동화책을 고른다.

곧 우리는 나를 대신해 활동할 정치인, 국회의원을 뽑을 것이다. 후보들의 화려한 공약은 눈부시다. 경제 복지 교육 문화 등 삶의 모든 부분과 연관되는 많은 공약. 언제부턴가 후보들 사이에서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 모든 공약이 다 지켜진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당면한 선거에서 핵심은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위기의 경제 살리기이다.

2개월 넘게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지역경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뭐라도 하려는 공공 기관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을 육성·지원하겠다는 공약은 거의 모든 후보가 내놓고 있다. 단지 오늘, 지금 이 순간 ‘문화예술계는 어떤가요’라고 물어보고 챙겨봐 주는 정치인이 잘 안 보일 뿐이다.

좋은 시절엔 화려하게 치장한 문화예술을 앞세우는 선진적 문화 정치인이 잘 보이지만, 이렇게 모두 어렵고 힘든 시기에는 마스크 쓰고 길에서 소독하는 그들 모습만 자주 보인다. 문화 관련 기관·단체도 문화예술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이런저런 방안을 만들지만, 획기적인 대안도 없고 무엇보다 ‘움직임’이 없다. IT 강국이라는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어색한 ‘무관중 실시간 공연 영상’으로 위안 삼을 뿐이다.

요즘 이뤄지는 ‘문화예술인 코로나19 피해 실태조사’는 문화예술을 계량화해 보고하는 것인데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수령한 심순애가 아니고서야 도무지 계산할 수가 없는 추상적인 측정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상상력을 발휘한 행정 지원방안을 독려하는데, 그 상상력이란 무엇보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발휘되는 것 아닌가. 문화예술인이 실력을 발휘해 적극적인 참여와 구체적인 요구를 당당히 밝혀야 한다. 암울한 시기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어도 국가적 차원의 지원도 없이 세계에 우뚝 선 유명 감독도 있지만, 배고픔으로 죽어간 무명의 작가 역시 바로 오늘 우리 문화예술계 현실이다.

외국 언론은 한국형 민주주의 방식 검역시스템을 자세히 보도한다. 탁월한 IT 역량의 효과적인 사용과 한국 정부와 국민의 자율적인 협조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는 한국이 굴지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고, 세계 20개국 정상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미 수치상으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세계 상위 5% 경제대국이고,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긴 이른바 30-50클럽 국가 중 7번째 국가이며, 경제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들려오는 칭찬 뉴스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BTS와 오스카상으로 빛나는 눈부신 아우라는 저 멀리 있지만, 공연과 전시가 취소됐어도 문화예술하겠다고 분투하는 예술인은 지금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치사율 10%를 오르내리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노력하는 이탈리아 작은 도시 시장님처럼 매일 밤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문화예술인은 없을 것이다. 다만, 동화책을 계속 만들 토대와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자고 아름답게 제안할 것이다.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오스카상 감독처럼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이 ‘선진국’에는 많다.

올아트22C 문화기획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