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소설의 효시인 ‘데카메론’은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을 이겨낸 인간의 귀한 유산이다. 지금처럼 병의 원인 규명과 치료법 찾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전염병에 맞서기 보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을 터.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는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신한 여성 7명과 남성 3명의 입을 빌어 신이 아닌 인간 이야기를 그렸다. 10명이 각자 10개씩 100가지다. 요즘 말로 ‘집콕’ 생활을 하며 가족을 잃고 일상이 무너진 아픔을 달랜 셈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가정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집콕의 일상화다. 모임이나 외출 자제가 자발적이라면, 일시적으로 휴업한 소상공인이나 문 닫은 학교 탓에 집에 갇힌 학생들의 울화통과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집은 너무 좁다.
층간 소음 분쟁이 급증세다. 최근 적게는 40%, 많게는 70%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언제 끝날지, 나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우울인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이도 많다. 코로나19 뉴스를 보며 불안 분노 충격 공포 슬픔 등 감정이 교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기 때 자살률이 급증하고 혼인 건수가 급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나마 우리나라 국민 96%가 외출을 자제하고, 93%는 모임과 종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니 ‘위기 극복 DNA’를 다시 확인한다.
외국에서는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총 사재기 바람이 분다고 한다. 프랑스에선 이동제한령을 시행한 이후 가정폭력이 30% 이상 증가했고, 중국에선 봉쇄령이 내려진 2개월 동안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3배 늘었다는 소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집콕이 불러올 가정의 위기를 ‘코로나 이혼’(covidivorces)으로 표현했다.
슬기로운 생활은 초등학교 1·2학년 용 교과목의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 세계적 대유행엔 ‘슬기로운 집콕 생활’ 지침이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가족·친구·동료와 소통한다는 ‘코로나19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이 한 예다. 특히 가정에선 노인과 어린이 돌보는 일이 우선이다. 세상 모든 집의, 세상 모든 놀이를 모아 보자는 ‘#아무놀이챌린지’ 등을 통해 어린이와 소통하는 한편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를 활성화해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K-방역’과 함께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은 어떨까. 가정을 사회 근간으로 여기고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아닌가.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