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02 19:17:29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천상병 시인의 시 ‘나의 가난은’을 읽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 통장은 없을 테니까 …”

이 시에는 행복과 고달픔의 감정이 함께 있다. 행복은 영속될 수 없다. 행복은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바뀐다. 심지어 행복한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가 다가올 것에 대한 염려가 함께 있다.

이 시는 낮과 밤의 시간이 하루를 완성하는 것처럼 행복의 빛과 고달픔의 어둠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다른 시 ‘편지’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라고 시인은 고백했는데, 포만과 결핍이 서로 뒤바뀌는 것이 우리 삶의 자화상일 것이다. 건강한 때와 질병의 때도 우리 삶의 두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사람이 큰 고통에 빠지면서 면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 개인의 면역뿐 아니라 집단 면역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집단 면역은 보다 확장된 면역의 개념이다. 하나의 집단 내부에서 면역을 지닌 개체가 늘어나면 면역력이 약한 개체가 감염될 확률 또한 떨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감염의 확산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게 위해서는 집단 면역, 즉 공동체 면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면역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는 기회가 있었는데, 율라 비스가 쓴 ‘면역에 대하여’도 심층적으로 면역의 문제를 다루는 서적이었다. 우리의 몸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신종 질병의 등장과 백신 접종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생각된 대목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서로의 환경”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각별했다.

“정원의 은유를 우리의 사회적 몸으로까지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정원 속의 정원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정원은 에덴이 아니고, 안락한 장미 정원도 아니다. 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 ‘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 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야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우리는 단독적인 개인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영향 관계에 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고달픔은 나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그릇되게 되면 다른 것들도 그릇되게 된다. 연기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비방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된다.

우리가 종교적인 차원의 자아가 될 때 나의 행복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에는 우리가 하나의 유기적 생명 공동체에 살며, 또 선의로써 서로를 돕는 조력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도 서점가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을 1947년 발표했다. 도시 오랑을 휩쓴 전염병 공포에 직면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그러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실존적 조건,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다고 썼다. 즉 언제든지 페스트균은 다시 공동체 내부에 창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페스트균은 집단 감염을 일으키는 균 그 자체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페스트균의 함의는 우리를 공포와 불행의 수렁에 몰아넣는 여러 가지의 것, 즉 전쟁과 폭력과 부조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도 한 개인은 사회적인 몸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 고통에 빠질 수 있는 이 공동체는 우리가 직접 가꾸어야 할 하나의 정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병고를 이겨내는 기도로 불교에서는 ‘약사여래경’을 독송한다. ‘약사여래경’의 발원문은 온 생명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기도문이다.

이 경에서는 인간이 숨을 쉬면서 현재를 사는 일이 햇빛, 공기, 물, 흙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생명의 청정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구촌의 생명들을 위협하는 질병은 이 생명세계의 청정함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 청정함의 훼손은 과도한 탐욕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모든 존재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인종이나 종교, 국경, 신분 등을 초월해서 질병으로부터 생명들을 지켜내는 일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 경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함께 발원하기도 한다. ‘약사여래경’뿐만 아니라 불교의 ‘보배경’도 질병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을 염원하는 기도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모든 생명존재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종교적 기도는 또한 우리 모두가 형제이며 자매라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누구에게나 본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견고하게 믿는 데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7. 7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8. 8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9. 9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10. 10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1. 1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2. 2부산시의회, 교통공사·시설공단 대표 후보 ‘부적격’ 의견
  3. 3[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MDL 지뢰 폭발 사건은 ‘도발’…北 정권 행위 강력 규탄”
  4. 4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5. 5외모·학력차별…민간도 공공도 불공정 채용
  6. 6백종헌 “부산대병원이 7년째 권역센터 빠진게 정상인가” 질타
  7. 7[2026 국감 브리핑] 자격유지검사 않는 고령운수자 1400명
  8. 8[속보] 김여정, 정부 대북 의료장비 지원 방침에 “지뢰 사고 조작 뒤 또다른 광대극…변종된 정치적 도발”
  9. 9박성훈, 부산 보훈의료 공백 해소 물꼬…보훈부 장관 “전면 조사해 대책 마련”
  10. 10'이종석 방미 거부' 부인했지만…한미 정보당국간 불협화음 여전
  1. 1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2. 2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3. 3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 시대…‘머무는 관광’으로 질적 도약 모색
  5. 5누리호 5차 발사…군집위성 5기 모두 교신 성공(종합)
  6. 6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107조…글로벌 빅테크 첫 기록(종합)
  7. 7홈플러스, 희망퇴직 돌입…MBK 경영권도 사라져
  8. 8부울경 산학 기술력으로 누리호 성공 쐈다
  9. 9근무시간에 사주 상담…HUG 직원 면직 처분
  10. 10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0조 시대’ 임박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7. 7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8. 8[뭐라노] 금정구가 인구감소지역이라고?
  9. 9금융기관 해킹 IP 상당수 ‘세탁용’
  10. 10부산시, 민선9기 공약 122개 실천계획 확정…총사업비 35조5250억 원
  1. 1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2. 2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3. 3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4. 4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5. 5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6. 6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7. 7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0. 10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유튜브 쇼츠 정치
통행료 면제 명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누리호의 도전, 역대 최다 15기 위성 싣고 우주로
국제기구 인증보다 주민 체감 효과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