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 분위기가 예년같지 않다. 블랙홀이 된 코로나19가 소득주도 성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 실정론과 조국 전 법무장관 파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보수 야당의 호재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후보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깜깜이 코로나 총선’이다.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선거다.
총선은 후보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크게는 집권세력의 실력을 평가받는 행위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처 능력평가가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처는 안팎으로부터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 대처가 과연 정부의 실력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방역관리를 정권의 치적으로 돌리는 데 일단은 성공한 분위기다. 정권 심판론은 자연스럽게 희석됐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야당 등에서 총선 이후 대통령 탄핵까지 들먹이던 상황이었는데, 분위기가 바뀌자 민주당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야당 복’에다가 ‘시운(時運)’까지 따르나 보다.
총선을 앞두고 난무하고 있는 온갖 꼼수는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꼼수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실시되는 총선답게, ‘위성정당’ ‘자매정당’ ‘형제정당’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정당들이 탄생했는가 하면, 비례정당들의 비례대표 명단 확정 과정도 가관이다. 과거 같으면 국민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냈는데, 이제는 아예 드러내놓고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다.
여권의 ‘자매정당’ 창당 과정에서 드러난 ‘조국 바람’은 더욱 가관이다. 강경 친문(친문재인)·친조국 세력이 압도했다. 열린민주당은 대놓고 친문·친조국 인사들을 비례대표 당선 가능 순위에 전진 배치시켰다. 조국 자녀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조국 사태는 검찰의 쿠테타”라고 외치는 전 법무부 인권국장,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역구 출마가 좌절된 전 청와대 대변인 등. 공공연하게 문재인 정권과 조국 수호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조국 전 장관을 일관되게 비판했던 금태섭 의원은 예상대로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조국 인사인 정봉주 김남국 등이 금 의원과의 공천경쟁을 선언하는 것으로 도발했고, 결국 금 의원은 무명의 강선우 후보에게 큰 표 차로 졌다
대신 울산 선거개입 혐의로 기소된 전 청와대 정무무석과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은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조국 수호를 외쳤던 김남국 변호사를 여당 강세지역인 수도권에 전략공천했다. 여권 내 어디에도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설 자리는 없었다. 친문 핵심 현역의원들은 모두 공천을 받았고, 친문 원외 인사 상당수도 공천 관문을 통과했다. 21대 국회 여당에서는 강성 친문·친조국 인사들이 득세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대로라면 지지세력만 바라보는 독선과 오만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친문·친조국에 치중된 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그리고 사실상 자매정당인 열린민주당의 공천 메시지는 분명하다.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총선 이후에도 소득주도 성장이나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탈원전 등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지난 3년간의 정책에 대한 수정은 없다는 것.
‘내 사람 심기’로 ‘막장 공천’ 비난을 자초했던 미래통합당이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 의석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21대 국회가 출범하기도 전에 시작될 극한적인 진영 대결은 불을 보듯하다.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였다는 오명을 금방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를 대응해야 할 중차대한 임무를 띤 21대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벌써 우려된다.
그래서 총선 투표율이 걱정이다. 그러잖아도 꼴 보기 싫은 정치인데 코로나19까지 겹쳤으니, 유권자들에게는 투표를 하지 않을 ‘명분’까지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심판 대상이 여당이 됐건 야당이 됐건 유권자가 표로 심판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심판이 없으면 반성도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이번 총선은 현 정권 3년의 성적표다.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 국민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19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코로나 착시’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현재의 국가 운영과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만족스럽다면 여당에 표를 던지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야당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투표를 통해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권에 경고장을 보내야 한다. 유권자가 책임을 방기하면 ‘우리나라’가 아닌 ‘저들만의 나라’가 되어버린다. 총선 결과는 즉시 우리 삶에 투영된다. 선거는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행위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