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서 어느 외로운 외야수를 생각해요/ 느리게 느리게 허밍을 하며··· 오후 네 시,// 바람은 꼭 텅 빈 짐승처럼 울고/ 살짝 배가 고파요.”(황병승 ‘이파리의 저녁 식사’ 중)
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한 시인의 시 구절이다. 뽑아놓고 보니 외야수라는 자리가 참 외로워 보인다. 저 넓은 야구장에서 가장 외롭게 서 있는 듯한 사람. 우익수든 좌익수든 중견수든 새삼 포지션을 나눌 필요 없이 저 넓은 외야를 혼자 책임질 것처럼 고독하게 서 있는 사람. 그렇다고 등골이 휠 정도로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는 아니다. 어쩌다 한 번씩 날아오는 공을 실수 없이 처리하기만 해도 최소한의 합격점은 받는다. 거기에 더해서 외야를 꿰뚫는 타구를 전력 질주하여 걷어낼 수 있는 주력과, 홈으로 질주하는 타자를 잡아낼 수 있는 강한 어깨를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타격 능력은 팀에서 최소 중간 이상은 차지해야 한다. 그래야 비교적 한가로워 보이는 수비 보직을 상쇄하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니. 한가로워 보인다는 말은 한편으로 수비에서 돋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이 자주 안 가는 자리라는 말도 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외야수에게 공이 자주 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실점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일이라고.
그러고 보면 외야로 날아가는 공은 모두 잠재적인 폭탄이다. 안타성 타구뿐만 아니라 평범한 플라이 볼도 모두 작은 실수 하나만 겹쳐도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야수가 실수하면 한 베이스를 내주지만 외야수가 실수하면 한 점을 내준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띄엄띄엄 공이 오지만 올 때마다 폭탄처럼 다루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서 서 있는 사람. 그가 외야수라면 한가로워 보인다는 말은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인정되는 한 가지.
외야에서 보면 내야는 늘 바쁜 곳이다. 바쁜 이들이 모여서 복닥대고 있는 것 같다.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대화도 자주 나누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외야수는 거의 외로운 섬이다. 외로운 섬 셋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 서로 대화하려고 해도 너무 멀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신호 정도가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정보인데, 그마저도 귀찮아서 자주 안 하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보다 더 충실하게 실천하는 보직이 또 있을까 싶다.
어찌나 거리두기를 열심히 했는지 세상의 중심에서도 가장 먼 곳에 있는 일원으로 외야수는 경기에 참여한다. 야구장이라는 세상의 중심에는 마운드가 있고 그 위에는 언제나 투수가 있다. 그러니까 투수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변방의 동료가 되어 그는 경기에 나선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변방으로 나가서 서 있다가 들어온다. 어떨 때는 공 한 번 잡지 못하고 들어와서 여느 선수들처럼 땀을 식히는데, 똑같이 쉬고 있는 와중에도 카메라에 포착되는 기회는 외야수보다 투수가 훨씬 더 많다.
외야수는 덕아웃에서도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앉아서도 외롭게 외야를 본다. 저기 내 자리에 누가 또 외롭게 서 있구나.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텅 빈 짐승처럼 부는 바람을 본다. 바람이 거세니 오늘은 더 조심히, 날아오는 폭탄을 다루어야 한다. 폭탄이 정말로 폭탄으로 터지기 전에 내가 더 빨리, 더 멀리, 더 미친 듯이 움직여야 한다.
외롭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빠지면 바빠지는 대로 저 넓은 외야를 외롭게 뛰어다니는 사람. 평소에는 우두커니 서서 느리게, 느리게 허밍하듯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 저 사람이 외야수라면 나는 어떤 자리에 서서 그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거울 밖에 서서 그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거울 안에 서서 외롭게, 외롭게 밤하늘을 보듯이 저 먼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다 보니 살짝 배가 고프다. 경기가 끝날 때가 되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