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교회와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COVID-19) 감염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면회 전면 금지’ 조치를 실시한 지 두 달째다.
방문객으로 북적대던 병원에 적막감이 감돈다. 스스로는 밥을 먹기 어려워 종종 자녀들이 수발을 들었던 할머니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직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다. 파킨슨 환자 B 노인은 가족이 면회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재활치료를 거부한다. 환자들의 격리감, 우울증이 한껏 증폭된다. 직원들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지고 구겨진 마스크만 크게 클로즈업된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거나 의심증상이 있어 자가 격리됐던 직원도 10명이 넘었다.
대학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온 환자가 있었다. 이분을 만나겠다고 어떤 청년이 면회신청을 했다. 평소라면 무사통과지만, 코호트격리 수준으로 관리되는 중환자실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하자, 할머니를 꼭 봐야 한다고 떼를 쓰기에 할 수 없이 데리고 들어갔다. 청년은 의식이 혼미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음 날 이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전날 사랑하는 손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셈이다. 코로나19 탓에 청년을 그냥 돌려보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눈부시다. 많은 질병이 극복되고 평균수명이 늘었다. 하지만 때때로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여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20세기에도 의학사에 남을 질병이 수시로 출몰했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지구촌 인구 4000만 명이 사망했다. 1957년 아시아독감으로 200만 명, 1968년 홍콩독감으로 80만 명이 사망했다. 1976년의 에볼라바이러스, 1980년의 에이즈 등은 동 시대의 의료를 비웃으며 홀연히 등장해 인류에 큰 재앙을 퍼부었다.
21세기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2003년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두려움이 생생한데, 채 5년도 안 된 지난해 말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한 코로나19가 온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은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돌연변이)에 의한 괴질이다.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의 원인이 처음 코로나바이러스로 밝혀졌을 때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동물에게 질병을 일으키고 사람에게는 얌전했던 바이러스가 갑작스레 난폭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인수(人獸) 공통질환으로 변모한 탓으로 본다. 이는 인간의 무차별적 야생동물 침습에 대한 자연의 경고인지 모른다.
이번에 우리나라는 초기 대응이 미흡했거나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전 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하는 나라. 질 높은 의료 수준과 시설, 편리한 접근성 등으로 의료시혜 우수 국가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다. 그런데 정부 정책 담당자들은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수시로 엇박자를 냈다. 다행히 민간 바이오기업과 의료계의 활약은 타국의 모범이 됐다. 지난 2월 초 이 질환의 ‘유전자 증폭검사(PCR) 키트’가 우리 기술로 개발돼 신속한 대량 검사가 가능했다.
이 검사는 검체에 시약을 떨어뜨려 신종코로나에 특이적인 유전자가 일정 수준 이상 증폭되면 양성 판정을 내리는 방법이다. 3월 말 기준 40만여 건을 실시해 세계가 놀랄 정도로 투명한 정보가 신속히 보도됐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위기에서도 번뜩이는 한국인의 창의성과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고 외신들도 칭찬했다. ①신속한 진단 ②조기치료 ③접촉자 격리 ④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⑤사회적 거리두기 등은 범세계적 규범이 됐다. 큰 고통을 겪는 대구 경북 지역민을 위한 온 국민의 관심과 후원, 특히 자기 목숨을 담보하여 치료하는 의료진의 희생과 봉사정신은 오래오래 회자될, 가슴 저려오는 감동이다.
머잖아 이 사태도 마무리되겠지만, 인류는 질병 역사의 중후한 교훈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악질 바이러스와 슈퍼박테리아가 수시로 출몰해 그때마다 호모 사피엔스는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변형 바이러스는 모든 국가의 공통 적군이다. 세계 각국은 자국 입장을 내세워 편협한 대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유기적인 범세계적 방역체계가 확립되어 필요시 신속히 가동돼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환난 중에 우리는 소망한다.
이미 세계는 우리 국민의 코로나19 대처 능력에 감탄해주었지만, 향후 우리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더욱 확실한 방역시스템과 매뉴얼을 구축해 명실공히 세계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다시 병실로 돌아서며 떠오르는 시구(詩句)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 기다림을 잊어버렸을 때도 너는 온다.”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환자들과 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성부의 ‘봄’이다.
수필가·의사·온천사랑의요양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