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 군항제나 서울 윤중로 벚꽃 같은 유명 벚꽃 거리가 아니더라도 동네 길가에 늘어선 벚꽃을 보고 있노라면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짧은 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은 하늘로 치솟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라 외출하기가 여의치 않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리라.
이 시국에 친구들에게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밥 먹는 것도 불안하다. 반찬을 권해야 하나 아니면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 짧은 식사 시간에도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맛도 모를 지경이라 빨리 시간이 갔으면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싫어서 일 거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을 보기 위해 가까운 공원이나 둘레길을 걷는 것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나 곁에 사람이 오는 것이 싫다. 서로 가벼운 인사 정도하고 지나쳤던 사람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 외면을 하거나 눈인사만 한다.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자니 그것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다른 사람이 피해보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이래저래 바깥 출입이 불편해 집 안에만 머문 지 오래다. 살면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홀로 있어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등산을 가거나, 바캉스를 가도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늘 친구나 지인과 함께 있었다. 그래도 혼자 있었던 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파서 집 안에 머물고 있었을 때뿐이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홀로 이 세상을 견디지 않도록, 그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더욱더 지인들을 만나고자 했다. 학창시절에도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밥 한 번 먹자 하면 같이 밥 먹을 사람도 많았다.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할 사람이 있었기에 그 비루한 현실의 수많은 시간을 견디어 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친구나 지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혹시 사회와 친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 홀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건설적인 것은 더욱 더 좋고. 그것에 즐거움이 따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문제는 비자발적으로 긴 시간 동안 오로지 홀로 보낸 경험이 없다 보니 혼자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나 지인의 SNS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타인의 일상을 통해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답을 얻을 것 같아서다. 지인의 SNS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와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더 우울해졌다. 친구는, 지인은 혼자 있으면서도 알차게 보내는데 나는 왜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혼자 있어도 행복한데 나는 무료하기만 할까? 결국 끊임없이 타인에게 신경 쓰는 나를 발견하곤 타인의 SNS를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가 강박관념이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시간에 나에게 집중해 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더듬어 생각해 본다. 이 시간만큼은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또 그냥 멍 때리고 앉아 있어도 좋고, 노래를 못해도 소리 높여 불러도 창피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못하는 일을 할 때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사회적 거리두기는 내가 모르는 나의 장점을 찾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