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미국에서 대선 열기가 달아오를 무렵 일이다. 공화당 내 최대 경쟁자인 조지 부시와 존 매케인 후보가 갑자기 화제를 모았다. 서로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인격적으로 신뢰할 만하다” 등의 찬사를 주고받아서다. 종전 선거에서 인신공격과 중상모략이 판을 쳤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민주당 후보들도 상대 헐뜯기가 아닌 각자의 정책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런 낯선 풍경에 언론매체는 ‘네거티브 방식의 역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모름지기 정치는 말이다. 언어의 미학이란 표현도 있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국가 정치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표현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선거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막말과 저급한 언사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YS(김영삼) 집권기에는 여야 4당 대변인이 모여 ‘언어 순화’를 다짐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한때뿐이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고, 그런 정치풍토와도 거리가 멀다.
이번 4·15총선 무대에서도 막말 고질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사무총장이 공식석상에서 미래통합당의 주요 인사들을 ‘애마’ ‘돈키호테’ ‘시종’으로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통합당은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고, 민주당도 무고죄로 맞고소에 나섰다. 여기에다 통합당 후보 두 명은 각각 ‘세대 비하’ 등의 발언, 세월호 가족에 대한 잇단 막말로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화들짝 놀란 통합당은 두 후보에게 제명 결정을 내렸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어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듭 고개를 숙였다. 첨예한 선거국면에서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으니 그러고도 남는다.
그뿐 아니라 지역구 여러 곳에서 후보 간 진흙탕 싸움이 난무하고 있다. 부산만 해도 그제까지 경고 27건, 수사의뢰 1건, 고발 5건에 이른다고 한다. 후보 토론회의 발언 등과 관련한 고소 사태도 속출하는 양상이다. 더욱이 일부 후보는 방송토론회에서 격조·품위는 고사하고 모욕성 말을 내뱉어 자질마저 의심케 만든다. 하기야 4년 전 총선을 비롯해 대다수 선거에서도 거의 다를 바 없었다. 상대방과 관련한 노인 폄하, 여성 비하, 원색적인 비방 등의 ‘막말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여든 야든,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려면 언어부터 가다듬고 수준을 높이는 게 기본이다. 정치·선거언어가 타락해서는 선진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