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유권자는 현명하다고 한다. 균형감각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선거 때마다 그런 적이 많다. 이른바 언더독(underdog) 효과다. 무턱대고 생기는 현상은 아니다. 세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나타난다. 약한 쪽이 이기기를 바라는 동정심이 작동한다. 만약 힘이 센 쪽이 오만하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그렇다고 약자에게 무조건 동정을 보내는 것 또한 아니다. 힘이 너무 약한 쪽에는 세가 형성되지 않는다. 일종의 사표 심리다. 찍어도 승패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으면 되는 쪽으로 지지가 쏠린다. 대세론 즉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다.
밴드왜건이건, 언더독이건 그런 현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냥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국정 운영의 자질이다. 멀리 볼 게 없다. 2016년 총선이 좋은 예다. 개표 직전까지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의 압승이 예상됐다. 결과는 122석. 참패였다. 123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에 원내 1당을 내줬다. 국민의당도 38석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김무성 대표가 말한 새누리당의 의석수 목표는 180석이었다. 이 발언은 언더독 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새누리당의 근본적인 패인은 당연히 무능하고 오만한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일 것이다. 국민의 밥그릇은 뒷전이고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정권에 대한 견제 심리 말이다. 물론 결과론이다. 이후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는 밴드왜건 효과가 뚜렷했다. 표심은 되는 집안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이 압승했다.
코앞에 닥친 4·15총선에서도 180석 논쟁이 한창이다. 촉발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범여권 180석’ 가능 발언이다. 180석은 재적 3분의 2(200석) 이상이 필요한 개헌을 빼면 사실상 모든 것을 독자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이다. 정당이면 욕심을 낼 만하다.
그런데도 유 이사장의 발언에 여야 모두 펄쩍 뛴다. 지난 총선의 학습효과다. 오만하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은 대세론의 막판 변수로 우려하고, 야당은 정권 견제론의 계기로 활용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이낙연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누가 국민의 뜻을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가”라고 제동을 걸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오만이 극에 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민심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 모르겠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