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두 얼굴로 다가온다. 빈자에게 날벼락 같은 재앙이 부자에겐 축복이 될 수 있다. 잉여사회로 전락한 듯 실업자가 넘쳐나던 외환위기 시절, 빈부에 달리 반응하는 위기의 양면성은 흔한 일이었다. 알거지로 파산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하강인생과 경매에 넘겨진 그들의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여 치부하는 상승인생. 계층 이동 사다리는 양방향으로 바쁘게 작동했다. 위기는 빈부격차를 증폭시키는 뇌관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경제위기 역시 그런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 연말 전망치(1.9%)에서 4.2%포인트 하향조정한 -2.3%로 제시한 데서 그 조짐이 읽힌다. 이 전망이 현실화하면 1998년 외환위기(-5.1%)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 된다.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42조4000억 원 줄어들고, 실업자와 저소득층은 각각 25만4000명과 43만7000명 늘어날 것으로 한경연은 분석했다.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8982억 원), 속출하는 예금·적금·보험 해약 등으로 그 조짐은 차츰 가시화하고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경제 기초체력을 약화시키는 최대 악재다.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세력인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의 붕괴를 가속화해서다. 외환위기는 중산층이 붕괴하는 시발점이었다. 1996년 68.5%였던 중산층 비중이 2006년 58.5%로 감소했다. 그러다 2015년 69.5%까지 올라갔지만, 다시 2016년부터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59.9%로 미끄러지면서 2006년 수준에 근접했다. 코로나 경제위기는 중산층 비중을 2006년 수준 아래로 추락시킬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부에 있다. 빈부격차를 키우는, 위기 극복의 적 말이다.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세입자의 주거불안 해소’를 제도 시행 사유로 제시했지만,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집주인에 대한 특혜나 다름없다. 주택 규모별로 50~100%의 재산세가 감면되고, 양도소득세는 최대 70%까지 공제된다.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는 임대주택을 수십, 수백 채 보유해도 한 푼도 부과되지 않는다.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도 각각 최대 75%, 80%까지 감면된다.
서울대 이준구 경제학부 명예교수에 따르면, 10억 원을 제조업에 투자했을 때 10년간 부담해야 할 세금은 35억4595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같은 금액으로 주택임대사업을 할 경우, 세금은 그 10분의 1 수준인 3억6242만 원에 불과하다. 이러니 너도나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현재 그 수가 47만여 명에 이른다. 그들이 149만여 채의 주택을 임대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정부가 내세운 세입자 편익은 실속이 의심된다. 임대료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했지만, 1%대로 떨어진 금리를 훨씬 웃돌아 임대사업자에게 수지맞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임대사업자에게 꽃길을 깔아주는 제도”라는 경실련의 지적은 옳다. 임대사업 명목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그를 통해 빈부격차를 확대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런 양상은 부동산 문제에 관한 정부 고위 관료들의 느슨한 행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공직자와 중앙 부처 장차관 87명 중 27명(31%)이 두 채 이상의 집을 가진 것으로 지난달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당 지도부도 ‘부동산 우향우’ 움직임에 가세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입안 당시 총리로 재직했던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총선 후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한 이인영 원내대표가 종합부동산세 완화론을 거론한 건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 출마한 총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여당의 ‘부동산 우향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민주당 후보 11명이 종부세 감면, 공시지가 현실화 반대, 양도소득세 감면 등 부자 감세 공약을 내걸었다. 재건축부담금 폐지 또는 감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주택담보대출 기준 완화 등 부동산 투기 조장성 공약을 발표한 민주당 후보도 15명이나 된다. 부자 감세, 투기 조장과 관련해 각각 22명, 38명의 후보가 공약을 내놓은 통합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4·15총선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 근절 공약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닐까. 물 만난 듯 고개를 치켜들게 뻔한 부동산 투기, 빈부격차 확대 기세에 정부·여당은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문 대통령의 부활절 메시지가 이런 의문에 휩쓸려 공중누각처럼 부유한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