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불안하다. 그러나 불안이 인간을 지켜줄 것이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안이 있다. ‘좀 더 불안한 것’과 ‘덜 불안한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전자를 병적 불안이라고 하고 후자를 적응적 불안이라 부른다. 이 둘의 구분은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불안을 느끼는 정도에 달려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의 어려움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 가서 느껴도 늦지 않다. 좋지 않은 일이 계속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은 우리 안에 큰 걱정만 키울 뿐이다. 그러나 불안을 대하는 우리 자세가 건강하다면 미래에 닥칠 위험에 잘 대비할 수는 있다. 그런데도 신종 감염병이 몰고 올 미래의 위험을 알지 못한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먼 훗날 혼돈과 무지, 극도의 공포심은 신종 감염병이 인간에게 깊은 내상을 남긴 정신적 유산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이미 세계는 감염병의 역습에 허를 찔려도 단단히 찔렸다. 신종 감염병은 중국을 넘어 유럽과 미주마저 집어삼켰다.
혼돈의 시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이름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멈춰 선 지 오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공공장소에 가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불안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무지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공포의 싹을 틔웠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공포 이전에 감염병에 취약한 인간 면역체계의 한계와 미지의 감염병이 가져올 치명적 결과를 예상하고 느끼는 예기불안이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보마저 충분하지 않아서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그 불안의 늪이 깊고도 넓어 보인다. 부족한 정보로 말미암아, 한낱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의 고귀한 문명과 높은 지적 능력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필요한 대책을 세워 하루빨리 코로나사태 이전의 평온했던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의 믿음을 보존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감염병의 역습에 맞서기 위한 정신건강의 백신을 맞아야 한다.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확한 정보에 기대어 전시 상황과 같은 긴급재난의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자가면역체계 강화와 방역에 대한 가짜 뉴스를 멀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온전한 정보는 우리 안의 믿음을 키우고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지성의 회복이다. 연대의 정신으로 생존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소설 ‘페스트’가 “감염병이 온 세상을 뒤덮은 혼돈의 도시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감염병이 가져온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가”를 잘 묘사해 주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다.
좀 더 불안한 상태를 덜 불안한 상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어렵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페스트’를 쓴 작가 알베르 까뮈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묵묵히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인의 헌신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함께 견디는 시민의 모습은 ‘모두가 절망하는 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일촉즉발의 감염병 확산 위기의 순간에 대구로 달려간 의료인과 ‘착한 임대료 운동’를 비롯한 시민의 공동체를 향한 헌신과 연대는 지금의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고통의 짐을 함께 나누는 시민의 성실함은 감염병과 싸우는 유일한 것 이상의 방법이다. 성숙한 시민이 함께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희망은 언제 어디서든 피어나는 들꽃과 같다고 했다. 어두운 기운의 불안은 희망의 빛으로 밝게 비추고 보듬어야 치유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골든크로스를 지나면서 시민의 마음에도 불안과 희망의 크로스가 교차하는 좋은 날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