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고 의아해할지 모르나, 경제학은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된다. 철학 없이 경제학은 존재할 수 없다. 경제학이 묻는 여러 철학적 질문 중 하나만 골라보자.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이 질문은 경제학에서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곧,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당혹스럽게 들릴지 모르나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런 인문학적 질문에 대해 같은 대답을 공유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며 악하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을 ‘신고전주의경제학’,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경제학자들을 ‘제도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인문학이 경제학을 가른 셈이다.
신고전주의경제학은 우리나라 모든 대학 강의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독자들께서 대학에서 경제학원론을 수강한다면 거의 백프로 이 경제학을 배운다. 그리고 이 경제학은 보수 신문과 모든 경제신문의 이론적 기초로 되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 시각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신고전주의경제학을 ‘주류경제학’이라고도 한다. 주류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이타심과 도덕은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다. 헌신 봉사 연대 정의는 신의 본질이요, 신의 전유물이다. 인간에게는 ‘위선’일 뿐이다. 신고전주의경제학 배후에 숨겨진 그들의 인문학이다.
그리고 경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성장하고, 사회도 발전한다. 반면 이타심과 도덕은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고 사회 발전을 방해한다. 이타심과 도덕이 정결하게 세척된 결과 ‘순수한 시장’으로 남겨지면 시장은 자동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면 전체 사회도 정상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을 멈추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세상은 ‘시장’을 통해 구원될 뿐이다! 이기적 본성, 규제 없는 자유시장, 작은 정부! 이 세 가지는 이미 우리 사회의 ‘문화’로 뿌리 내려 우리 사고와 행동을 강력히 지배한다.
주류경제학의 인문학이 이 땅의 문화로 정착되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출세 지향 매국행위가 단죄되지 않고 오히려 ‘성공의 전략’으로 적극적으로 벤치마킹됐다. 이타심과 연대 그리고 정의는 한국인의 사고목록에서 지워져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런 인문학과 경제학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전제에 불과한지 드러내주었다. 지난 2월 대구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 그러자 공중보건의, 간호장교를 비롯한 의료진과 구급대원, 자원봉사자가 전국에서 위기의 대구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 우리는 월급 더 주지 않는데도 온몸을 불살라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부족한 마스크를 더 만들어야 한다며 공장에서 공짜 노동하는 지역주민들도 보았다. 더 긴급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마스크 안 사기 운동 벌이는 시민도 많았다. 어떤 호텔 주인은 숙소를 못 구한 의료진을 위해 객실을 통째 내주었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수많은 시민이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영세상인에게 긴급재난자금을 지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어낸 소설이 아니다. 이 땅의 실제상황이다. 어떤 페이스북 친구가 재밌게 묘사한 것처럼 대한민국 보통 시민에겐 국난 극복이 취미요, 자원봉사가 특기다!
정부 역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출입국자들을 ‘적절하게’ 관리해 외부 감염원을 차단하면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나아가 내부 확산을 억제하고자 사회적 거리두기도 강화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세계적 역병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해낼 수 있었다. 한국은 세계의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안고 있다. 시민의 훌륭한 덕성과 정부의 민주적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만큼 이타적이고 도덕적이기도 하다. 실망 못지않게 희망도 준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보여준 진실이다. 이제 인간의 위대함을 조롱하는 동시에 정부를 혐오하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버리는 주류경제학의 인문학을 버릴 때가 됐다. 케인스경제학과 제도경제학 등 비주류경제학은 이들의 인문학을 부정하면서 경제학을 시작한다.
영산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