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검은 태양과 숲 /김이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23 19:36:45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모든 사람이 힘든 시기를 통과 중이다. 정부가 이달 20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부 완화하였으나 대다수 국민은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다. 단지 자신이 집에 머무는 것만으로 인류가 안전해진다는 것을, 한 개인이 타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놀랍게도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민감한 존재인가를 뼈아프게 깨닫고 있다.

혼자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나도 모임을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제8회 저자와의 만남’이나 박상순 시인을 초청해 열기로 했던 ‘제53회 낭독회’는 취소 또는 연기한 상태다. 책방이지만 소그룹 독서 모임, 아카데미, 특강, 낭독회 등을 꾸려가지 않으면 책방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뿐더러, 월세를 내기도 어렵다. 모처럼 들르겠다는 지인들에게도 다음에 오시는 편이 낫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책 사러 와서 실망할까 봐 매일 문을 열고 기다리는 양가적 태도란!

나는 자발적 격리자 같다. 동굴 속에서 식물 벽화를 그리는 사람 같기도 하고. 오늘도 나는 마스크를 낀 채 책방 구석구석 소독하며 눈물을 참았다. 아무도 없는 책방에서 여태껏 만나지 못한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했다. 내일은 온라인 수업 학생 만족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환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나는 통계나 정산, 보고서 작성에 끙끙거리는 편이고 시간도 없어 정부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을 주는 책방 공모사업에 신청서조차 내지 못한다. 그야말로 ‘1인 독립책방’을 운영하며 대학 강의료를 이곳 운영자금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따금 우울과 비관, 무기력이 나를 잠식한다. ‘검은 태양’(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한복판에 놓인 느낌이 엄습할 땐, 사람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소름 끼친다. 책방지기가 방문객을 무서워하다니! 몇 달 새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나치게 적응한 걸까? 아니면 ‘n번방 사건’이 준 사회적 쇼크가 억지로 가슴에 묻어뒀던 한 손님의 충격적인 성희롱 발언을 다시 내 살갗 위로 떠올리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을 쉰다. 심호흡한다. 아침마다 걷기 시작한 지 한 달하고 나흘 지났다. 나 자신도 신기해서 달력에 초콜릿 색으로 동그라미 치고 있다. 몽유처럼 투명하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골목들과 횡단보도 지나 숲의 입구쯤에서 자전거를 비키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더는 회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성범죄 병폐 등이 위협하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한다.

책방 문제도 버텨야 할지,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지 심사숙고한다. 암울하며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왜 이렇게 멜랑콜리하며 울화가 치밀도록 답답한 인간일까?’ ‘진짜 최악이야, 도무지 웃을 일이 없군!’에서 사고가 살짝 바뀌었다. 지혜와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의욕과 허리의 유연성을 찾아가고 있다. 보통 걸음으로 4㎞ 정도 산책, 아무튼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부터 나타난 변화이다. 그렇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만든다.”(레베카 솔릿)

책방에서는 길 하나만 건너면 숲이다. 3년째 책방지기로 살면서도 호숫가 숲길을 걸어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육체와 사유가 인접하는 건 아닌가 보다. 지난 3월 초에 허리를 다쳐 쩔쩔맬 때 지인들이 ‘걷기’를 추천했다. 걷는 것이 병원 물리치료보다 낫다고 했다. 숲이 주는 피톤치드나 운동으로 분비되는 엔도르핀을 몰랐던 바 아니었지만, 그제야 호수 둘레 숲길이 몇 킬로미터냐고 물어봤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숲과 자연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이 사실을 경험으로 알지만, 경제성장이니 과학기술의 개발이니 하며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여 코로나19를 초래한 건 아니었을까? 나부터도 책방에 난방기,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행사 시엔 종이컵 등 일회용품들을 소비하며 강박적으로 각종 세제를 사용하지는 않았던가. 없어도 무방한 물건들을 이고 지느라 욕심을 부렸으니 허리 디스크가 돌출하는 벌을 받아도 싸다.

오늘 아침 숲길에는 바람이 심했다. 하얗게 쏟아지는 벚꽃들을 우두커니 맞았다. 작디작은 새소리에도 경외감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자연의 순리와 아름다움, 걷기의 효과를 말하려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다니!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2. 2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3. 3“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4. 4부산 철마 한우 싸다 싸
  5. 5[포토에세이] 노랗게 물든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6. 6부산도시철 1회용 승차권 구매도 카드로
  7. 7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8. 8“우리가 알던 그 시절 SM 맛” 이수만표 흥행 공식 또 적중…돌풍 속 잡음도
  9. 9부산대·교대 통합 온도차…부실 보고 질타도
  10. 10데이터센터 몰리는 사하구…주민 갈등 줄일 조례 탄생
  1. 1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2. 2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3. 3우크라 공관원 추가 철수에 국힘 반발
  4. 4‘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5. 5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6. 6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7. 7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8. 8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9. 9'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10. 10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1. 1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2. 2SB선보, 대선조선 인수 마침표…‘SB대선’ 닻 올렸다
  3. 3집값 상승 이끈 ‘수영리버·비치벨트’…부산판 한강벨트 주목
  4. 4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대…부산 노동자의 42%(종합)
  5. 5市, 불꽃축제 앞둔 광안리서 바가지 근절 캠페인
  6. 6동남권 해양ICT 육성…해운AX·북극항로 개척 협력
  7. 7타 지역 줄어드는데 부산 5.9%↑…고령화 여파도
  8. 8‘모두의 창업’ 2기 가동…부울경 1135명 레이스
  9. 9선박 배기가스 저감·밸브제어로 두각…AI 관제 신사업으로 영토 확장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21일
  1. 1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2. 2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3. 3“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4. 4부산대·교대 통합 온도차…부실 보고 질타도
  5. 5데이터센터 몰리는 사하구…주민 갈등 줄일 조례 탄생
  6. 6부산도시철 7년 만에 멈춰서나…22일 노사 최종교섭
  7. 7창원 병원 혈액투석실 C형 간염 14명 집단감염
  8. 8생곡소각장·퐁피두 등 전·현 시정 공방…울산 국힘 퇴장 파행
  9. 9부산시 신임 기획조정실장, 하민상 공수처 담당관 임용(종합)
  10. 1022일 출근길 기온 ‘뚝’…부울경 최저 2~9도
  1. 1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2. 2‘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3. 3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4. 4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5. 5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6. 6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7. 7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8. 8"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9. 9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10. 10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교육이라는 희망
주당 ‘13.7시간’ 고용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가덕신공항 참여사 이탈 우려…공사비 현실화 시급하다
지방우대지수 지역 현실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문화예술의 시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