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힘든 시기를 통과 중이다. 정부가 이달 20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부 완화하였으나 대다수 국민은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다. 단지 자신이 집에 머무는 것만으로 인류가 안전해진다는 것을, 한 개인이 타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놀랍게도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민감한 존재인가를 뼈아프게 깨닫고 있다.
혼자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나도 모임을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제8회 저자와의 만남’이나 박상순 시인을 초청해 열기로 했던 ‘제53회 낭독회’는 취소 또는 연기한 상태다. 책방이지만 소그룹 독서 모임, 아카데미, 특강, 낭독회 등을 꾸려가지 않으면 책방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뿐더러, 월세를 내기도 어렵다. 모처럼 들르겠다는 지인들에게도 다음에 오시는 편이 낫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책 사러 와서 실망할까 봐 매일 문을 열고 기다리는 양가적 태도란!
나는 자발적 격리자 같다. 동굴 속에서 식물 벽화를 그리는 사람 같기도 하고. 오늘도 나는 마스크를 낀 채 책방 구석구석 소독하며 눈물을 참았다. 아무도 없는 책방에서 여태껏 만나지 못한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했다. 내일은 온라인 수업 학생 만족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환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나는 통계나 정산, 보고서 작성에 끙끙거리는 편이고 시간도 없어 정부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을 주는 책방 공모사업에 신청서조차 내지 못한다. 그야말로 ‘1인 독립책방’을 운영하며 대학 강의료를 이곳 운영자금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따금 우울과 비관, 무기력이 나를 잠식한다. ‘검은 태양’(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한복판에 놓인 느낌이 엄습할 땐, 사람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소름 끼친다. 책방지기가 방문객을 무서워하다니! 몇 달 새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나치게 적응한 걸까? 아니면 ‘n번방 사건’이 준 사회적 쇼크가 억지로 가슴에 묻어뒀던 한 손님의 충격적인 성희롱 발언을 다시 내 살갗 위로 떠올리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을 쉰다. 심호흡한다. 아침마다 걷기 시작한 지 한 달하고 나흘 지났다. 나 자신도 신기해서 달력에 초콜릿 색으로 동그라미 치고 있다. 몽유처럼 투명하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골목들과 횡단보도 지나 숲의 입구쯤에서 자전거를 비키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더는 회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성범죄 병폐 등이 위협하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한다.
책방 문제도 버텨야 할지,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지 심사숙고한다. 암울하며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왜 이렇게 멜랑콜리하며 울화가 치밀도록 답답한 인간일까?’ ‘진짜 최악이야, 도무지 웃을 일이 없군!’에서 사고가 살짝 바뀌었다. 지혜와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의욕과 허리의 유연성을 찾아가고 있다. 보통 걸음으로 4㎞ 정도 산책, 아무튼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부터 나타난 변화이다. 그렇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만든다.”(레베카 솔릿)
책방에서는 길 하나만 건너면 숲이다. 3년째 책방지기로 살면서도 호숫가 숲길을 걸어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육체와 사유가 인접하는 건 아닌가 보다. 지난 3월 초에 허리를 다쳐 쩔쩔맬 때 지인들이 ‘걷기’를 추천했다. 걷는 것이 병원 물리치료보다 낫다고 했다. 숲이 주는 피톤치드나 운동으로 분비되는 엔도르핀을 몰랐던 바 아니었지만, 그제야 호수 둘레 숲길이 몇 킬로미터냐고 물어봤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숲과 자연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이 사실을 경험으로 알지만, 경제성장이니 과학기술의 개발이니 하며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여 코로나19를 초래한 건 아니었을까? 나부터도 책방에 난방기,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행사 시엔 종이컵 등 일회용품들을 소비하며 강박적으로 각종 세제를 사용하지는 않았던가. 없어도 무방한 물건들을 이고 지느라 욕심을 부렸으니 허리 디스크가 돌출하는 벌을 받아도 싸다.
오늘 아침 숲길에는 바람이 심했다. 하얗게 쏟아지는 벚꽃들을 우두커니 맞았다. 작디작은 새소리에도 경외감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자연의 순리와 아름다움, 걷기의 효과를 말하려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다니!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