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팽목항에 있었다. 휴대전화 너머 슬픈 바람이 보였다. 6년째 ‘진실’을 찾아 나부끼는 노란 깃발이 선했다.
-왜 팽목항에 갔나.
▶매년 한 번은 찾는다. 차명진(경기 부천병) 후보가 또 망언을 했지 않나. 선거가 끝났으니 보수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세월호 유족을 찾아 사죄해야 한다.
-보수는 세월호를 외면하지 않나(홍준표 당선인은 지난 16일 “세월호는 해난사고에 불과하다”고 했다).
▶답답한 심정에 홀로 왔다.
이성권.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제17대 국회의원. 주일본 고베총영사. 바른미래당 부산시장 후보…. 그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미래통합당 경선에서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에게 패했다.
그는 1년 전 책방(북카페 공감)을 열었다. 시사토론도 하고 책도 원 없이 읽고 싶다고 했다. ‘한일 경제전쟁 토론회’나 ‘경제신문 읽기모임’을 한다는 문자메시지도 종종 보내왔다. 정의당 부산시당이 주최한 ‘아베 정권 경제도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후기를 SNS에 남기기도 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정당 목소리도 듣고 싶어하는 중도 보수. 그와 유승민을 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으로 이끈 지향점이다.
이성권이 SNS에 남긴 글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원인 중 하나는 충언을 하는 개혁파 그룹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박 패권주의가 비판세력을 죽이고 ‘내시 같은 사람’만 주변에 두자 그 부메랑이 탄핵으로 돌아왔다.” 실제로 보수당이 잘나갈 때는 미래연대(16대)·새정치수요모임(17대)·민본21(18대)과 같은 소장파들이 있었다.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은 강경보수 일색의 주류와 충돌하며 중도층의 마음을 얻었다. 보수가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범보수 185석)한 비결 중 하나다.
이성권의 진단처럼 어느 시점부턴가 통합당에선 ‘다름’이 사라지고 ‘친박 단일종’만 득세했다. ‘강남당’ ‘영남당’ ‘존재 자체가 민폐당’이라는 연관검색어의 덫에 걸려 들었다. 그 결과는 지난 15일 우리가 목격했던 대로다. 바닥 민심은 여전히 과거와 싸우면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진영대결에만 매달리는 보수에 총구를 겨눴다.
이성권은 보수 재건의 출발점을 팽목항에서 찾았던 것 같다. 세월호를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라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보수 주류와는 결이 다르다. 이런 쓴소리가 통합당에 공명을 울릴지는 미지수다. 새 지도체재라고 내놓은 ‘김종인호’가 진보 우위가 표준이 된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민주당의 쓴소리 김해영(연제)도 낙선했다. 그는 지난 2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1대 국회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진영 논리보다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하라는 의미다. 또 “국회의원은 99명이 ‘예’라고 하더라도 용기 내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를 강하게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는 낮은 자세로 섬기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남·원·정의 주장과 너무도 닮았다.
김해영의 역할은 ‘여당 내 야당’이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소득으로 대물림되고 있다”고 친문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역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반대했다. ‘180석 슈퍼여당’에 김해영이 없는 건 그래서 아쉽다. 불어난 몸집을 견제하지 못하면 견고하던 많은 것이 순간 무너진다.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반성한다”며 입바른 소리를 계파 갈등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거대 권력은 쉽게 부패하고 오만해진다.
여든 야든 중요한 것은 정치적 건강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 역할은 정치 신인들의 몫이다. 다행히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 중 절반이 넘는 151명이 초선이다. 민주당은 85명(더불어시민당 포함)이나 된다. 통합당에서는 ‘830세대’(80년대생·30대·00년대 학번)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당의 미래는 보수에는 없었던 또 다른 ‘김해영’을 키우는 데 달렸다. 보수는 더 많이 탄핵의 출발점인 팽목항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임기와 공소시효를 무기한 연장하고 ‘팽목항 기억공간’도 서둘러 만들자”고 제의해야 한다. 국민이 보수를 외면한 시발점이 세월호인데, 보수가 세월호를 외면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탄핵의 강’을 건너는 첫걸음은 세월호 진실 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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