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산 시민은 시정 리더십의 민낯을 봤다. 검찰이 ‘탐관오리의 전형’이라고 칭한 전 경제부시장에 이어 스스로 성추행범임을 인정한 뒤 사퇴한 시장까지. 경악하는 이상으로 시민 자존심이 추락했다. 분통 터지며 고통스럽지만 외면할 수 없다. 이들의 재판과 수사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또 이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이럴 수 없다’는 경계의 징표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재수 전 경제부시장 소식에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시민이 많다. 검찰은 징역 5년과 뇌물 수수액인 4700여만 원을 추징금으로 구형하면서 ‘탐관오리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직무 관련자 여러 명에게서 금품을 받았고, 특히 청와대 감찰 이후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일하면서도 이전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유 전 부시장은 마지막까지 항변했다. “업무와 관련 없이 지인들과 정을 나눈 것”이라고.
그의 1심 선고는 내달 22일 내려질 예정이나 확정 판결까지 제법 긴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결과도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건 민초의 재물을 탐하는,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를 뜻하는 탐관오리(貪官汚吏)를 단죄한 역사의 기록이다.
팽형(烹刑)은 말 그대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조선 시대엔 탐관오리를 단죄하는 명예형으로 바뀌었다.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불을 지피는 시늉을 한 뒤 탐관오리로 지목된 죄인을 그 가마솥에 넣었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놓는다. 가족들은 장례 절차에 따라 그 죄인의 장례를 지낸다. 그 죄인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야말로 산송장이 되는 셈이다.
오 전 시장 추문은 더 고약하다. ‘5분 정도 짧은 면담 과정’에서 이뤄진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성폭력·성희롱 전담팀 구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고, ‘성희롱이 민선 7기에서 뿌리 뽑아야 할 구태’라며 산하 기관의 성인지 감수성과 인권의식 교육 강화를 요구하던 그였다.
‘소가 웃을 일’이라며 5억 원짜리 소송을 제기했던 유사 의혹을 고려하면 낮은 성인지 감수성 탓에 저지른 일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업무시간에 집무실로 여직원을 불렀다는 점이다. 성추행이 권력 관계의 산물임이 다시 확인됐다.
‘그의 5분’은 1974년 부산시 행정사무관으로 시작한 50년가량 공직 생활에 먹칠을 했다. 30여년 만에 지방권력을 교체한 시민의 열망을 2년도 못 채우고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동북아 해양도시를 지향하는 350만 시민의 수장 역할도 엉클어졌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 적응과 신공항 등 미래성장 동력 창출 방안은 물론 당장 코로나19 사태라는 미증유의 위기상황 대책이 그 예다.
사과와 사퇴가 끝이 아니다. 오 전 시장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떳떳하게 수사에 임하는 건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그의 5분’이 피해자에겐 5시간 같았을지 모른다는 지적처럼. 휘발성이 큰 사안은 따로 있다. ‘그의 5분’ 처리 과정에서 청와대 인지 여부다.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었다. 게다가 유 전 부시장을 영입한 이도 오 전 시장이다. 유 전 부시장과 청와대 관련설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제기됐다. 정치권이 이미 군불을 때고 있다.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강제추행이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이 내려지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처럼 현행법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조선 시대 법률은 서릿발처럼 성범죄에 엄정했다. 성폭행범은 사형에 처했다. 성폭행 미수나 성추행·성희롱에 해당하는 경우엔 장형(杖刑), 곤장 80~100대에 유배형이 더해졌다. 중국 명나라 법과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정체성이 결합한 결과다.
두 사람의 추문에 조선의 사례를 더한 것은 부산 시민 자존심의 바탕이 그 시대 민초에 닿아 있는 까닭이다.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부산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1592년 9월 1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5일이 ‘부산시민의 날’이다. 더 각별한 건 앞서 동래성이 함락당한 4월 15일인 내달 7일이다. 동래부사 송상현 공과 민초가 목숨을 바쳐 항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날 오전 송 공을 모신 송공단과, 송 공과 함께 순절한 민초가 잠든 임진동래의총에서 각각 추념 행사가 열린다. ‘부산민주운동사’(부산민주운동사편찬위원회)는 부산 시민의식의 뿌리를 여기서 찾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그의 5분’이 얼마나 큰 과오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정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이렇게 엄중하다. 이런 추문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자존심을 곧추세우는 건 다시 시민 몫으로 돌아왔다. 참 부산 시민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