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나 그 구성원의 권한을 대신 수행하는 사람을 권한대행이라고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가피한 때는 사망, 하야, 국회 탄핵소추 의결,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한 업무 불능 등의 사유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 중 네 가지 상황을 모두 겪어봤다.
헌정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거쳐간 8명 중에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 허정(1896~1988)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하야하자 외교부 장관이던 그가 대행을 맡았다. 당시 부통령은 사임했고 국무총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허정 대행은 제2공화국 출범 전까지 100일간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내각제 개헌을 성사시키고 총선까지 치렀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으로 대행이 됐다가 대통령까지 오른 최규하가 신군부의 대리역에 그쳤던 데 비하면, 허정은 위태롭고 어지러운 정세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국가나 지자체의 수장 공백기에 긴급 투입되지만 운신 폭은 상당히 애매한 게 대행이다. 시쳇말로 못해도 문제, 잘하면 더 문제다. 대통령의 유고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노무현 정부의 고건 총리가 대표적이다. 국회 탄핵소추 가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대행체제로 전환됐지만 헌재의 탄핵 심리 후에는 대통령의 국정 복귀가 유력했다. 이런 경우 직무 수행을 성실히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면 살아 있는 권력의 집중적인 견제가 쏟아진다. 당시 노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보수 언론들이 대행의 역할을 과도하게 주문하면서 결국 대행직 역임이 고건 총리의 정치 행로에는 오히려 독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직책 특성상 대행은 재임기간이 짧다. 그러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사퇴로 인한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무려 1년짜리다. 재·보궐선거가 연 2회에서 1회로 줄었기 때문에 새 시장은 내년 4월에야 뽑힌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꼼수 사퇴 이후 1년3개월간 대행 체제였던 경남도 사례를 제외하면 광역지자체로는 이례적이다. 공교롭게도 시장 보선은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치러진다. PK 민심은 늘 선거 판세의 가늠자였다. 후임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대선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기에 따라선 대행이 단순 관리자가 아니라 차기 시장 후보로 도약할 기회도 얻는다. 과도기 부산시정을 책임진 대행의 처신에 정가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미묘한 시기의 대행직 수행은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