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나, 불교 성인 중 가장 인간미 넘치는 이는 석가모니의 출가하지 않은 제자였다는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아닐까 싶다. “중생이 병 들어 나도 병이 들었습니다. 중생이 치유되면 내 병도 사라질 겁니다.” 석가모니의 분부를 받고 병문안을 온 문수보살에게 했다는 이 한마디에 유마거사의 인간미가 농축돼 있다.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成佛)하지 않겠다. 모든 중생이 구제되면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지장보살의 다짐과 같은 감동을 준다. 유마거사는 병의 원인을 ‘집착’이라고 했다. 부와 권력 등에 대한 탐욕이 집착의 몸통이다. 집착은 남보다 나를 앞세우는 차별에서 비롯된다. 평등을 실천하는 게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만인과 만물의 대립이 해소된 절대평등의 경지를 뜻하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 그것이다. 유마거사는 이를 침묵으로 표현했다. 언어 자체가 차별의 씨앗이라는 의미다.
유마거사 얘기를 꺼낸 건 코로나19 사태 속에 부처님오신날을 맞게 되어서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 세계 의료인의 헌신이 사무치게 고마워서다. 쿠바 의료진의 활약상이 특히 눈길을 끈다. 지난 27일 쿠바 의료진 217명이 방역을 돕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쿠바는 지난달 22일 이탈리아에도 의료진 52명을 파견하는 등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20여 나라에 1200여 명의 의료진을 보냈다. 2010년과 2014년 아이티와 서아프리카에 각각 콜레라와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도 의료진을 파견해 방역 활동을 도왔다. “진정한 국제 연대를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방역 전사, ‘코로나 쿠벤저스’가 아닐 수 없다.
쿠바의 이런 활약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줄곧 다른 나라들과 무역분쟁을 벌여온 미국과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 전염병 발생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각국에 “쿠바 의료진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국의 위신을 스스로 걷어차는 비인간의 극치라 하겠다.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문명의 출현을 예고한다. 그 문명은 세계 자본주의를 무한대결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한 인본주의 혁명이어야 한다. 죽임이 아닌 살림의 문명 말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800달러에 불과한 나라이지만 공존과 상생, 국제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는 쿠바에게서 그 본보기를 본다. 이것이 바로 유마거사의 마음이자, 부처님이 오신 까닭이 아니겠는가.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