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에서 인터넷을 곧잘 이용하는 편이지만 아직은 활자세대인 것 같다. 인터넷 매체보다는 활자 매체가 좀 더 신뢰가 간다고나 할까. 정보를 신문이나 책으로 얻을 때 좀 더 안정적인 신뢰를 갖는 꼰대인 것 같다.
꼰대라고 한 이유는 예전의 습성이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외식 문화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가족들과 외식을 하면 주로 중식집을 이용했다. 중식집에 가면 짜장면이냐 짬봉이냐를 놓고 결정장애를 겪다 결국 한가지를 포기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결국은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아픔. 그래서 함께 가는 지인이나 동료가 있을 경우에는 서로 맛을 본다는 이유로 다른 메뉴를 나눠 먹는 진풍경이 발생했다. 이런 현실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짬짜면이란 이름으로 한 번에 두가지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메뉴가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엇이나 함께 나눠 먹던 ‘밥상 공동체’를 코로나19는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과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 본다.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삶 자체가 변화할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는 우리를 움츠려 들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방역당국과 국민의 노력으로 인해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방역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어느 새 성큼 지나가고 있다. 예년 같으면 5월 각종 행사와 이벤트로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다보니 4월 말부터 6월 초순까지는 주말 행사에 치여 지냈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이벤트가 취소됐다. 한편에선 ‘물리적 거리두기’는 유효해도 심리적 거리는 더욱 가깝게 하자는 연대와 지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의 동료는 최근 한 청소년을 만났다. 극히 평범한 청소년이지만 관심이 필요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고구마 줄기캐듯 하나하나 속 마음을 들어내며 도움을 청하는 청소년의 일상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상하관계와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내가 만난 여러 청소년도 개개인의 상황과 처지는 다르지만 대부분이 가슴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쉬운 것은 한발만 떨어져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닌 사안이 부모와 자식에게 비수가 되어 서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닫힌 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콘크리트 철벽이 되어 간다.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에게 전하는 진정 어린 충고가 자녀에게는 잔소리 일 뿐이다. 청소년 자녀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는 다르게 행한 잠시의 일탈이나 행동으로 인해 부모님과 주위의 눈총을 받게 되고, 이것이 싫은 나머지 엇나가거나 무대응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찾을려고 한다. 그럴수록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다.
필자는 ‘포기’라는 이름의 또다른 선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포기는 체념이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청소년에게는 실패와 실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오만과 교만, 무지와 실수투성이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먼저 청소년기를 보낸 꼰대 중 한명이지만 청소년을 믿으려고 노력한다. 아주 작은 믿음에도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배신하지 않고 돌아와 준다. 고맙다.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24시간 자신의 개인번호를 열어 놓고 청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5월, 어린이와 청소년, 가정의 중요함을 생각해 본다. 청소년의 곁에 내가, 어른이 있다고, 너와 함께 힘이 돼 줄 수 있다고, 어깨를 토닥이는 기관과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꼰대가 아니라. 국제신문도 정론을 통해 청소년에게 꿈을 주고 시대정신을 세워가는 부산의 희망 언론이 되어 주길 소망해 본다.
부산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