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IT업체에서나 시범적으로 실시하던 재택근무가 전체 산업으로 폭넓게 시행되고, 학교는 비대면 강의로 인터넷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가입자가 증가해 인터넷망 사용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상품과 서비스의 비대면 거래, 배달, 유통 등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런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10년은 앞당겨진 듯하다. 다행히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19가 최근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확진자가 한자릿수로 이미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그만큼 세상에 미친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는 뜻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면 팬데믹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재난의 뉴노멀’이다.
이는 도시 설계를 포함한 건축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한다. 이미 잘 알려졌지만, 질병은 도시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에 페스트가 퍼졌던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페스트에 대처할 수 있는 도시 설계를 밀라노 통치권자로부터 명령받았다. 건강에 유익한 ‘이상적 도시’를 다빈치는 고안했다.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재난 상황에서 도시 건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중세 시대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다.
지금 우리 시대는 재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계속 반복되는 산불 지진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와 사회 재난의 증가 추이를 보면 임시시설 공급에 대한 계획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재난 앞에선 누구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닥쳐서 허둥대며 수습하면 늦다.
이번 연휴 기간에도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했다. 우리는 코로나19와 더불어 산불 위험에 관한 ‘안전문자’도 여러 번 받았다. 2000년 이후 대형 산불은 지난 1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까지 모두 30건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강원도 산불은 주택과 시설물 1000곳가량을 모조리 불태웠다. 4000여 명이 대피해야 했다. 서울 여의도의 65% 면적이 잿더미로 변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에게 주택피해재난지원금이 주어지긴 했지만, 집을 새로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재민들은 컨테이너 박스나 비닐하우스에서 살 수밖에 없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나 비닐하우스에서 한여름 뙤약볕과 한겨울 찬바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그들에게 재난은 집뿐 아니라 일상까지 모두 빼앗은 셈이다. 건축·주거가 재난 대비 메뉴얼에 추가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빠르게 지어진 음압 병동을 보면서 이재민을 위한 임시거처도 신속하게 지을 수 있는 건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여러 제약 조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재난 때 정부의 역할이 여러 가지 있지만, 사람들이 최소한의 일상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건축가의 역할에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대책 관련 거버넌스에 건축가를 포함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전염병이 한번 휩쓸면 도시가 완전히 마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팬데믹’에서 이른바 ‘건강 도시’를 뜻하는 ‘하이게이아’ 개념을 언급하면서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건축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건축의 역할이 더 커졌다.
전염병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재난에 대한 대비도 평상시에 요구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소를 잃지 않도록 미리 외양간을 고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은 반드시 고쳐야 소를 다시 기를 수 있다.
㈜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