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免疫)에 대해 처음으로 기술한 이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 추정)다. 그는 ‘펠레폰네소스전쟁사’에 기원전 43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때 환자를 돌볼 수 있었던 이는 흑사병을 앓다가 회복된 사람뿐이라고 썼다. 과학적 방법에 의한 면역이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2200여 년이 지나서였다.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1796년 우두(牛痘)를 앓은 사람은 천연두(天然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두 고름물집에서 채취한 액체를 8세 소년에게 접종했다. 소년은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았다. 면역이 생긴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예방접종을 통한 집단면역(herd immunity) 덕분이었다. 집단 내 다수가 면역을 가지고 있으면 전염병의 전파가 느려지거나 멈추게 되는데, 이런 집단면역이 전 세계적으로 달성됐다는 뜻이다. 천연두와 달리 코로나19의 집단면역은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다. WHO가 추정하는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RO·환자 1명이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평균 인원)는 2.5인데, 이 상태에서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전체 인구의 60%가 감염돼야 한다. 현재 집단면역에 필요한 세계 각국의 항체 형성률은 3~14%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올 가을과 겨울 코로나19 2차 대유행설이 나오자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전면적인 면역(항체) 검사에 돌입했다. 방역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면역이 확인된 사람에게는 관련 증명서를 발급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른바 ‘면역 여권’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제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효과는 의문스럽다. 항체가 형성돼도 완전 면역을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사태의 본질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불평등의 심화다. 빈부 양극화만이 아니다.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좁은 생활공간, 먹고 살려면 전염병에 걸려도 일해야 하는 현실은 생사마저 양극화한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달 초 센-셍-드니 빈민가의 치명률이 295%나 급증했다. ‘21세기 자본’을 쓴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코로나19를 “치명적인 불평등을 드러낸 위기”라고 했다.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방치하는 한 코로나 극복은 요원하다. 생물학적 면역을 넘어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면역’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