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帳幕)은 단절이고 어둠이다. 장막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체로 음습하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철의 장막’이든 ‘죽의 장막’이든 ‘인의 장막’이든 장막은 걷히기 마련이다. 장막 뒤의 일은 언젠가는 햇빛 아래 드러나게 된다. 옛 성현들은 장막의 위험성을 넘는 방편으로 신독(愼獨)을 권했다.
말 그대로 장막 안에 홀로 있을 때 더 신중하라는 가르침이다. 인간의 자제력을 기대한 것이지만, 그리 유용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인류의 역사가 아예 장막을 하나씩 걷어내는 방향으로 걸어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주주의는 공개주의가 원칙이다.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를 지고 있다.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으면 동의를 얻기 어렵다.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국민은 실패한 정부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장막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몰락의 길로 갔다.
그의 실패는 비공개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많다. 그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3전 4기로 시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여당 시장이 됐으니, 하고 싶은 일이 오죽 많았겠나 싶다. 하지만 그는 취임 이후 시민과 멀어졌다. 대신 ‘왕수석’이니 ‘시장 뒤에 무슨 라인이 있다’느니 하는 말이 나돌았다. 그의 와병설까지 그럴 듯하게 떠돌았다.
서울에서도 많은 이들로부터 ‘오 시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시장 실종’ 상황이 길어지면서 서울 정치권에서는 그가 ‘신비주의 전략’을 쓰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일부 지방정부 수장들이 정무직 공무원들로 ‘인의 장막’을 치는 행태는 ‘대통령 흉내내기’라는 조롱거리가 된 지 제법 오래됐다. 시장 대신 ‘문고리’만 보이고 비선개입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좋은 시정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는 재임기간 시정평가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사퇴 회견에서 밝힌 대로 ‘죄’를 범한 지난 7일은 부산에서도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한 날이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19 대응의 모범국이 된 것은 역대 정부에서 쌓아 올린 선진 의료시스템과 헌신적인 의료진 그리고 국민의 희생 덕이다. 부산 시민은 물론 온 국민이 기업의 줄도산과 대량 실업의 공포 속에서도 ‘국난 극복’을 내세운 정부의 요구를 감내하는 중이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코로나 19와 전쟁 중에 몸져눕고, 여러 지방정부 수장들이 일자리를 잃은 국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국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국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법적 기준을 떠나 도의적으로 용서받기 힘든 대목이다.
그의 ‘죄’에 대해서는 정치적 사법적 책임과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그가 ‘죄’를 범한 후 16일 만에 사퇴 회견을 한 과정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총선을 의식한 ‘숨기기’나 ‘미루기’가 시도됐다면 잠시 속일 수 있을지라도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있다. 적어도 ‘양심선언’이나 ‘내부고발자’의 목소리로 진실이 드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뒤늦게 ‘몰랐다’는 식의 변명이 통할 것으로 기대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지방정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인 ‘공개의 원칙’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17개 광역정부는 물론 200개가 넘는 기초 정부의 수장들은 ‘공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방정부 수장은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공과 사의 경계를 구분 짓기가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한때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집무실을 개방형으로 바꾸고 ‘열린 시장실’로 문패를 바꿔 다는 게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방정부 수장들의 부정부패가 국민적 공분에 직면한 시기였다.
최근 들어 칸막이와 장막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가 확연해지고 있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꾸준히 확대되고 영향력도 커지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만큼 이런저런 유혹에 빠질 위험성도 높아진다.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저주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는 길이다.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