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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내가 먹는 뽕잎밥 /김재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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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5-07 19:38:1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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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대수술을 마치고 서울대학교병원 입원실에 누워있을 때였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배 교사들이 문병을 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성의는 고마웠는데 한 선배 교사가 가라앉은 병실 분위기를 바꾸려고 농담을 했다.

“야, 후배! 니 허벅지가 와 이리 약하노? 내 팔뚝보다 가늘다.” 그것까지는 참을 만했다. 이어진 농담이 좀 심했다. “니는 가슴에 지퍼를 달아서 더울 때는 열었다 닫았다 하기 편하겠네.”

그 말을 듣고, 간병하던 어머니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퇴원한 뒤로 다시는 입원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규칙을 정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기, 밤 11시 전에는 취침하기, 일주일에 한 번은 등산하기, 아침마다 한 시간은 운동하기, 술 많이 마시지 않기, 긍정적으로 살기 등.

내가 날마다 특별한 밥을 짓는 것도 건강을 위해서다. 밥을 안치기 전에 먼저 약물을 끓인다. 물에 넣는 재료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다. 속새, 달맞이꽃, 뽕나무잎, 느릅나무 잎과 가지, 어성초, 구기자 줄기, 오가피 줄기, 쇠무릎, 예덕나무 줄기, 금은화, 삼백초, 명아주 중에서 몇 가지 넣는다. 범초산장에 약물 재료는 널려 있다.

어느 때나 꼭 들어가는 것은 뽕잎과 뽕나무 가지다. 뽕잎은 철분·칼슘·비타민이 풍부하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고치를 만들지 않는가. 뽕잎을 오래 먹으면 혈관이 비단실처럼 튼튼해진다. 다른 병은 몰라도 중풍은 예방할 수 있다.

약물이 다 되면 밥을 안친다. 백미, 찹쌀, 보리, 율무, 쥐눈이콩, 은행, 귀리, 무말랭이, 옥수수, 고구마, 아로니아, 다시마 등을 넣고 약물을 붓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어린 뽕잎을 한 줌 넣는다. 이렇게 지은 밥이 내가 즐겨 먹는 뽕잎밥이다. 밥 짓는 과정이 복잡해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별로 어렵지 않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 세끼 먹는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대충 먹는 사람은 건강도 대충 유지할 수밖에 없다.

병에 걸린 다음 약을 먹으면 늦다. 병에 걸리기 전 면역력을 길러두어야 한다. 면역력은 약으로 키울 수 없고 날마다 먹는 음식과 운동에 달렸다. 전염병이 유행하더라도 면역력을 충분히 길러두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덜 고생한다.

내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로 3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매주 한 번은 등산을 하고 돋보기 없이 책을 읽는다. 그때 문병 와서 농담한 선배는 당뇨·고혈압으로 투병한다고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튼튼한 사람이라도 잘못된 습관이 있으면 건강하게 살 수 없고, 허약한 사람일망정 좋은 습관을 가지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먹는 뽕잎밥을 똑같이 짓기 힘들지만 나름 응용하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 쌀밥에 표고버섯이나 밤 대추 은행 마늘을 넣는다든지 미역귀다리 톳 고구마 무 감자 비트 콩나물 등을 넣을 수도 있겠다.

뽕잎밥을 먹는다고 하루 이틀 만에 몸이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 두 달, 꾸준하게 먹으면 세포가 달라지고 체질이 변하게 된다. 밥이 달라지면 몸도 같이 달라진다. 밥에 율무를 넣어 먹으면 물혹이나 사마귀가 없어진다, 내 눈 주위에 물사마귀가 제법 도톰하게 돋아났는데 율무를 조금 더 넣어 몇 달 동안 먹으니 없어져 버렸다. 밥상에 투자하는 것만큼 확실한 건강비법은 없다.

뽕잎밥을 먹고 숲길을 걷는다. 물이 졸졸 흐른다. 바위가 버티고 있으면 둘러가고 흙이 가로막으면 스며들어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떨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것이 물길이다.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목숨도 그렇지 않을까. 자칫 뜻밖의 사고로 생을 마칠 수 있지만 조심하고 잘 돌보면 명주실처럼 질긴 것이 생명이다. 건강하다고 자만하면 그 순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약하게 태어났어도 잘 돌보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숲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나무 속에는 엘리베이터 같은 물길이 숨어 있다. 땅 밑에서 나뭇가지 끝까지 흐르는 길이다. 전기 없이도 물이 순식간에 올라간다.

나무는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밥을 짓는 약물의 재료로 여러 나뭇가지를 넣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몸 아픈 사람은 나무를 자주 안으며 느껴볼 일이다. 저 푸른 하늘로 힘차게 흐르는 나무의 물길을!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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