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미덕을 기리는 전통의 범국민적 기념일이다. 매년 이날 가정마다 자녀들이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기억이 새롭다. 감사의 선물과 효도관광 풍경은 5월 가정의 달을 상징했다.
어버이날은 우리나라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부활 주일 전 40일간의 기간인 사순절 첫 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과 그리스 풍습에다 1910년 미국의 한 여성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 1914년 토머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 정식 기념일이 됐다.
매년 이날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각각 달고 모임에 참석했다. 자녀들은 집에서 어머니에게 선물을 안기는 등 가족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미국에서는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면서 빨간 카네이션의 의미가 생겼다. 아버지의 은혜는 뒷전으로 밀린 게 이상할 법도 하다. 그러다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어버이날로 개칭되면서 아버지도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산업화시대와 맞물려 온나라에서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본격화한 1970년대 매년 5월 8일에는 거리마다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단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슴을 활짝 편 그들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은혜를 알아주는 자식이 있다는 자부심이었고, 어버이로서의 존재감이었다. 어버이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한국에서는 그랬다.
전통의 어버이날 풍경은 사라졌다. 빨간 카네이션의 의미도 퇴색했다. 선물은 용돈이 대세를 이루고, 굳이 어버이를 찾아 은혜를 기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극단적으로 어린이날 손주 선물을 준비하는 부모 세대에 어버이날 선물로 “퉁 치자”는 자녀 세대가 있다고 하니 씁쓸하다. 무늬만 그럴듯한 어버이날 풍경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상실감을 느낀다. 가슴이 아리다.
오늘은 어버이날. 세태는 달라졌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새겼으면 좋겠다. 어버이는 빨간 카네이션과 선물보다 그 마음을 더 바라고 있지 않을까.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