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다. 그는 초자연적인 풍경 속에 사람을 의도적으로 작게 그려 넣은 독특한 풍경화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늘 뒷모습만 보여준다. 화가는 왜 평생 뒷모습에 천착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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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창가의 여인’(1822년). |
프리드리히가 48세 때 그린 이 그림 속 여인도 뒷모습을 보여준다. 모델은 19세 연하였던 그의 아내 카롤린이다. 단정한 올림머리에 초록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남편의 작업실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본다. 숭고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그린 다른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에서 화가는 실내를 배경으로 인물 비중도 크게 그렸다. 당시 그는 결혼 4년차로 슬하에 자녀도 두었고, 러시아 귀족의 후원으로 큰 작업실을 두고 비교적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림 속 아내는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창밖에는 맑은 하늘과 나무가 늘어선 해안의 모습이 보인다.
창 오른쪽으로 보이는 기다란 돛대는 그녀가 지금 지나가는 배를 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녀 머리와 몸이 왼쪽으로 살짝 기운 이유일 테다. 높은 천장, 수직과 수평만 있는 거대한 벽, 실내 색상에 딱 맞춘 듯한 초록 드레스는 지금 그녀가 서 있는 공간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세계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창밖 세상은 그녀의 이상 세계일 수도 있다. 평생 고향 드레스덴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카롤린에게도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 이외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을 테다. 지금 그녀는 지나가는 저 배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에도 스케치 여행으로 수시로 집을 비웠던 남편 때문에 아내는 더 외로웠다. 그런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프리드리히는 창가에 선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화폭에 곱게 담았다. 어쩌면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의 고독한 심정을 대변한 것일 수도 있다.
독일 북부 출신으로 24세 때 드레스덴에 정착한 그는 30대에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늦게나마 가정도 일구었다. 하지만 평생 따라다닌 우울증 때문에 완전히 은둔자로 지내거나 홀로 숲과 들판을 거닐며 고독한 방랑자로 살았다. 우울증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는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 이듬해 큰 누나를 잃었다. 13세 때 남동생이 호수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대신 변을 당했고, 둘째 누나도 장티푸스로 죽었다. 어린 시절의 비극과 상처는 평생 극복되지 못했지만 내면의 고독과 삶의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뒷모습은 그 사람 표정이나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앞모습보다 훨씬 정직하다. 꾸미거나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 우울과 고독 속에 살았던 프리드리히에게 뒷모습은 자신의 아픈 감정을 들키지 않을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