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해방 후 세계 최빈국이던 한동안이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 외제는 고급품이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원조로 경제를 유지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국산품이 제대로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친 데다 해방 후 남북분단과 6·25 전쟁으로 기존 산업시설마저 대부분 잃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산된 제품은 조악했다. 품질이 외제와 견줄 형편이 못됐다. 외제 가운데 으뜸은 미제였다. 미 군납품이 명품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으니까.
1961년 이후 원조가 직접적인 물품 제공에서 차관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좀 변했다. 국산품이 급속히 늘어났다. 하지만 외제 선호 현상은 여전했다. 품질 차이가 엄청난 탓이다. 뒤늦게 산업화에 나선 후발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력이 높은 선진국을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래서 등장한 게 국산품 애용 운동이다.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량을 제한하면서 국내 산업을 보호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민족성이 강한 국민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맥도날드가 국내에 진출할 때 농민 반대와 강한 반미 정서를 고려해 감자만은 미국에서 공수하지 않고 국산으로 사용하는 파격(?)을 취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외제를 사용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을까 봐 주변 눈치를 살펴야 했다.
1980년대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공급망에 강하게 엮인 우리 경제 여건상 더는 국산품 애용 운동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국산 품질이 국제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면서 외제 선호 현상도 옅어졌다. 이제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대접받는 국산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방역마저 한류를 일으키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66개국 23개 국제기구에 ‘K방역’ 전수에 나섰다. 세계 최고의 부를 이룬 미국조차 이 대열에 합류했다. 미 연방정부에 75만 회 분량의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유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지난 11일에는 마스크 200만 장까지 미 정부에 긴급 지원했다. 지난 1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검사 횟수를 자랑하면서 “모든 주에서 5월에만 인구당 검사를 한국이 4개월간 한 것보다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