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회사는 자기나 동료의 연봉을 공개하거나 묻는 것을 금기시한다. 어떤 회사는 자신의 월급을 남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비밀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의 월급이 동료보다 많다는 게 알려지면 위화감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 이유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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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10명 이상이 일하는 회사는 취업규칙을 작성해 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93조). 취업규칙은 근로시간·휴게시간·휴일이나 징계·포상 절차 등 근로관계에 관해 적어 둔 문서다. 말하자면 사규다. 근로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의 결정 방법과 구체적인 임금액도 당연히 취업규칙에 포함된다. 인사평가나 근속연수·근무부서에 따라 얼마를 받게 되는지가 취업규칙에 명시돼야 한다. 법령으로 봉급표가 전 국민에 공개되는 공무원처럼 임금을 미리 정해둔 호봉표는 취업규칙으로서 근로자 전체에게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14조).
호봉표가 첨부되지 않은 취업규칙을 신고하면 노동부는 시정을 명할 수도 있다. 개별 인사평가 점수는 비밀일 수 있어도 평가점수에 따라 얼마의 월급을 받게 되는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전체 사원에게 공개되어야 하는 정보다. 연봉이 비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개별 연봉협상을 거쳐 스카우트되는 일부 임원이나 특별한 직원뿐이다. 사실상 회사가 제시하는 대로 월급을 받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근로자는 취업규칙에 따라 미리 정해진 임금을 받아야 한다. 취업규칙보다 적은 월급을 주는 근로계약은 무효이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에 정해진 임금을 받을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97조). 물론 취업규칙보다 적게 주는 것만 무효이고, 그보다 더 주는 개별 근로계약은 유효하다.
이처럼 취업규칙은 그 회사 근로자 전체에 일률적으로 근로조건을 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대부분 조항이 그러하듯 취업규칙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장도 미리 정해둔 취업규칙 규정에 구속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특정 근로자의 임금을 멋대로 깎거나 동료들보다 적게 줄 수는 없다. 여성이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만만하니까 남들 주는 수당을 안 주거나 월급을 깎는 것도 안된다. 무조건 취업규칙대로 다른 근로자와 동일한 기준에 따라 줘야 한다.
그런데 자기나 동료의 연봉을 비밀로 하면 누구도 자기가 받는 월급이 취업규칙에 미달하지는 않는지, 규정에 어긋나게 잘못 책정된 것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아무도 모르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다. 사장은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근로자에 따라 월급을 달리 책정할 수 있다. 마음대로 월급을 정할 수 있는 사장은 더욱더 막강한 갑이 된다.
취업규칙에 미리 정해둔 근로조건은 사장 마음대로 변경할 수도 없다. 미리 정해둔 직급이나 직무별 기본급과 각종 수당은 물론 식비나 표창에 관한 부분도 기존 규칙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건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 근로계약이 노예계약이 아닌 이상 최초 근로계약을 체결할 당시 정년까지 예정된 근로계약조건을 계약 당사자 일방에 불과한 사장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게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기까지 보면서 “난 우리 회사 취업규칙을 본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이 현장에서 상당부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계약만이 아니라 갑과 을의 권력관계가 강한 곳은 어디에서나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성추행·가정폭력이 불법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도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취업규칙은 그나마 정상적인 노동조합이 있는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10%만이 볼 수 있을 뿐 나머지 90%의 근로자는 본적도 없고 찾으려 해서도 안되는 문서가 된 것이다. 하지만 보려면 볼 방법은 있다. 취업규칙은 노동부에 신고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대개는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내 월급이 제대로 책정된 것인지, 수당은 제대로 나왔던 건지, 징계나 인사절차는 똑바로 된 것인지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사용자가 취업규칙의 본 규정만 신고하고 정작 중요한 각론(세칙)은 신고를 안해두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금속노조법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