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앞에선 누구나 무장해제가 되는 모양이다. 지난 달 29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개최한 좀 특별했던 코로나19 브리핑 이야기다. 이날 브리핑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이 코로나와 관련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기획됐다. 사전 녹화된 어린이들의 질문 영상에 정은경 본부장 등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씽씽이는 타도 되나요” “생일파티를 하면 안 되나요” 등 깜찍한 질문에 참지 못한 듯 정 본부장의 얼굴엔 엷은 웃음이 번져나갔다. 매일 근엄하고 심각한 얼굴로 현황을 설명하던 모습만 봐오던 터라 이 장면을 본 국민도 함께 미소를 지었을 듯 하다.
새삼스레 정 본부장의 당시 웃음이 떠오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수장의 미소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희망을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 브리핑 당시는 열흘가량 국내 확진자 수가 10명 안팎을 유지하며 안정세를 찾아가던 때였다. 본부장의 웃음 하나를 과대해석 한다 싶겠지만, 당시 상황이 잘 유지만 되면 코로나 종식도 그다지 멀지 않아 보였다. 실제 며칠 뒤인 지난 3일 정부는 긴 연휴가 끝나는 6일부터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국민적 피로감이 심해지던 때였지만, 그나마 성공적인 ‘K방역’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일 뿐, 우려하던 일이 끝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6일 서울 이태원의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하던 날이었다. 긴 연휴 기간 조마조마하던 사태가 터진 것이다. 게다가 이태원 클럽은 이용자들이 많아 일반적인 지역감염과는 달리 제2의 신천지 사태로 번질 수 있는 특성까지 가졌다. 일부 클럽이 성 소수자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가 더해졌다. 특히 신천지는 그나마 명단 확보 등 교단 측 협조라도 가능했지만 이태원 클럽의 경우 이용자들이 정보 공개를 꺼려 전수검사마저 쉽지 않았다.
걱정했던 대로 이태원 클럽 발 확진자 증가는 전방위적이었다. 학원 교회 콜센터 노래방 구치소 교도관 등 2·3차는 물론 4차 전파까지 이루어졌다. 일부 클럽 이용 확진자는 자신의 신분을 숨겨 피해를 키우기도 했다. 이렇게 2주 가까이 지나며 클럽 발 확진자는 어제까지 170명에 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광범위한 전파가 이뤄지긴 했어도 하루 20~30명 씩 나오던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잠복기를 고려할 때 이게 일시적 소강상태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사태를 낙관할 수는 없어도 다시 희망을 가질 여지는 없지 않다. 방역 당국 역시 이태원 사태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혔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집단감염 저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선 이태원 발 감염으로 지금까지 진단검사를 받은 이들은 6만 명을 넘겼다. 사태 초기 클럽이라는 특성상 방문자 전수검사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거의 대부분 검사를 받았다. 여기엔 전방위적인 추적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익명 검사’라는 당국의 신속한 조치가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달 간 생활화한 시민의 높은 방역 의식도 돋보였다. 확진자가 다녀간 인천의 교회 2곳에선 762명 모두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콜센터와 실내체육시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꼼꼼히 지킨 결과다.
물론 안심하긴 이르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방역의 최대 고비가 될지도 모를 초중고 및 유치원생의 등교가 내일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된다. 개학 강행 후 확진자가 폭증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면 우려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다섯 차례나 연기된 등교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고 더 미루기엔 여러 문제가 있다. 신천지와 이태원 등 대규모 감염 사태를 겪으며 당국과 국민이 쌓아온 경험은 학생들의 등교 이후에도 힘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코로나19의 백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K방역’의 힘은 우리를 버티게 하는 백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전 세계에 앞장서서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 다른 나라에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최근 다시금 국민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처럼 ‘K방역’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미 세계가 주시하는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과도한 관심 만큼이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도 무겁다.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를 2·3차 대유행 가능성을 얼마나 차단하느냐가 관건이다. 코로나의 완전 종식은 아니더라도, 생활 방역 속 장기적으로 안정적 관리가 가능한 게 그 목표일 터이다. 그런 만큼 ‘K방역’의 진짜 힘을 보여주는 건 사실상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