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의 불결을 없애 전염병을 예방하고, 소독된 분뇨를 활용해 농업생산성을 높이며, 교통을 편리하게 하여 물류를 증대시키자.”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킨 개혁사상가 김옥균(1851~1894)은 1882년 쓴 논설 ‘치도약론(治道略論)’에서 도로 정비와 공중보건 업무를 수행하는 ‘위생경찰’을 창설하자고 주장했다.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던 이 제도가 도입된 건 일제 강점기였다. 일제는 경무총감부 산하 경찰에 방역, 음식물 검사, 청결 유지 등 위생 업무를 맡겼다. 위생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통치수단이기도 했다.
위생경찰의 연원은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열대 국가와의 통상 확대가 제도 탄생의 촉매제였다. 전염병이 빈발하는 열대지역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려면 인구 관리, 특히 청결이 중요했다. 의사 요한 피터 프랑크(1745~1821)는 이런 생각을 ‘의사경찰(medical police)’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체계화했다. 근대 자본주의는 이처럼 위생을 핵심으로 한 인구 관리를 통해 발전했다. 공장 가동을 위해선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자의 건강 관리는 필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이를 근대 정치의 근본 특성이라고 했다.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에 의한 통치, 곧 ‘생체정치(biopolitics)’다.
그 정치의 이상적인 모델을 1946년 출범한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서 찾을 수 있다. 헌장에는 인류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최고의 건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인류 보건은 강대국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헌장대로라면 대만의 경험은 모든 WHO 회원국에 공유되어야 한다. 인구 2380만 명의 대만은 현재 확진자 440명, 사망자 7명으로 코로나19 방역의 세계 최고 모범국이다. 그런데도 대만은 중국의 반대로 지난 17일 개막한 세계보건총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미국은 제약사들과 코로나 백신 우선공급계약을 맺는 등 백신·치료제 독점에 혈안이 돼 있다.
WHO 정신은 실종된 채 무한경쟁과 상호비방이 난무하는 죽임의 정치만 유령처럼 떠돈다. 생체정치의 시계는 여전히 이윤 극대화를 위해 식민지 국민의 몸을 노동기계로 취급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멈춰서 있는 듯하다. ‘보건 제국주의’나 다름없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