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모두 청소년이었다. 유아와 아동은 앞으로 청소년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모두 청소년기의 추억과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청소년기를 그냥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이처럼 인간의 생애주기에 청소년기가 분명하게 존재함에도 이 시기를 ‘질풍노도, 주변인’ 등의 용어와 함께 ‘잘 넘겨야 하는 시기,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아동’을 떠올리면 ‘가족, 돌봄, 놀이’ 등의 낱말이 연상되며 ‘청년’을 생각하면 ‘취업, 자립, 결혼’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아동과 청년을 검색해보면 언급한 용어와 관련된 이미지가 주로 확인된다.
‘청소년’을 떠올리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는가? 많은 사람이 ‘교복, 공부, 학원’ 등을 말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해야 하는 아이들이라고 규정하거나 ‘비행, 가출, 학교폭력, 게임중독’ 등과 같은 다소 부정적인 단어를 들먹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기억 등을 통해 형성되는데 영화 ‘사냥의 시간’이나 드라마 ‘인간수업’ 같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채택한 프로그램들조차도 학교폭력, 범죄 등에 연루된 청소년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기는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상당한 애매함이 존재한다. 이에 많은 청소년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려진 존재-어른이 되기 전의 미성숙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즉 청소년기의 고민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가 버릴 것, 그들이 경험하는 아픔도 대학만 들어가면 다 나을 수 있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으며 표정과 눈빛에 따라 순식간에 중 2병 환자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등 청소년이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무엇인가?
어쩌면 아동과 청년 사이에 끼어있는 청소년을 ‘바리데기 공주’처럼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백승남 작가의 ‘바리공주:영혼의 수호신’에 따르면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바리데기 공주는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버려졌다. 그러나 바리공덕할멈과 할아범의 손에서 행복하게 자란 바리데기 공주는 자신을 버린 친아버지를 살리기 위하여 큰 위험을 감내하며 모험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고통받는 영혼을 구원하는 신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
어쩌면 청소년은 바리데기 공주처럼, 아동과 청년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지난달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청소년은 바리데기 공주처럼 버려졌다. 약 50개에 달하는 정당들의 공약 중 청소년을 위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많은 수의 청소년이 거주하는 부산의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청소년은 교육과 돌봄의 대상으로만 치부되었다. 이에 학교 신설, 다함께 돌봄센터 신설, 글로벌 교육특구 지정 등의 교육을 위한 공약만이 난무할 뿐 청소년을 생애주기의 한 단계로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이다. 동시에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이제는 청소년을 교육과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당당한 자기 삶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은 갑자기 태어나지 않는다. 청소년은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가정, 학교, 정치, 사회 전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제는 성인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청소년과 공유하고 그 공간을 청소년의 참여로 채워가야 한다. ‘18세 선거권’과 함께 당당한 유권자로 등장한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