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영원한 장미꽃 엄마 /정희경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21 20:13:26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무슨 기념할 일이 있으신가 봐요?” 미리 주문한 붉은 장미 100송이를 건네며 꽃집 주인이 환하게 웃는다. “엄마에게 드리려고요.” 놀라는 표정이 한참동안 내 뒤를 따라 온다.

연두와 초록이 어우러진 오월이다. 길거리와 산에는 흰 꽃들이 많이 보인다. 조팝꽃과 찔레꽃, 아카시아가 지고 이제 이팝나무와 산딸나무, 때죽나무가 흰 꽃을 피워 세상이 하얀 등을 단 것처럼 환하다.

시야를 조금 내 쪽으로 당겨보면 그 싱그러움 사이에 붉은 점들이 촘촘하다. 아파트 입구에도 학교 담장에도 가정집 담벼락에도 덩굴장미가 활짝 피었다. 내가 한아름 안고 있는 붉은 장미에 비하면 덩굴장미는 오히려 수수하다. 꽃대가 가지런하지도 않고 제 맘대로 늘어졌다. 꽃송이도 작은 편이다. 그러나 향기는 멀리서도 벌과 나비를 부르고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늘 들른 꽃시장에는 온갖 색깔의 장미가 황홀하다. 아시아가 원산지인 야생 장미를 인공으로 교잡하여 만들어낸 원예종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장미의 수가 600여종이라고 하니 장미는 꽃 중에서 가장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변화하고 있다

찔레꽃, 해당화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야생 장미라 한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에도 장미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우리나라에 장미가 피고 진 것도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장미가 우리 곁에서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성에게 바치는 최고의 꽃으로 장미를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장미 품종이 있음에도 품종이 매년 개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미를 사랑한 릴케는 그의 묘비명처럼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익명의 잠”에 빠져 있을까?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에서 장미는 에밀리에게 애도와 위로가 될까? 호메로스는 어떤 영감으로 ‘장미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이라는 구절을 만들었을까? 이 많은 의문들은 장미의 아름다움에서 시작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상징하는 베르사유의 장미와 두 가문의 장미 문양 때문에 이름 지어진 장미전쟁도 장미의 아름다움을 전제로 한다. 그 아름다움은 화려하고 풍성하고도 진하다.

덩굴장미 만발한 오월, 덩굴장미에서 엄마를 읽는다. 그러나 장미는 내게는 특별히 아버지로 먼저 다가온다. 아버지는 장미에 접을 붙여서 온갖 색깔의 장미를 넓은 마당에 꽃피우셨다. 지나가던 사람이 오월이 되면 우리 집 장미를 구경한다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엄마와 우리 자매들은 불만이었다. 장미에만 빠져 있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장미 속의 가시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엄마는 장미를 한 그루도 가져오지 않으셨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장미가 싫다고 하셨다.

그런데 올해 구순을 맞는 엄마의 마당에서 키 낮은 장미 한 송이를 발견했다. “이제 나도 너거 아부지 보러 갈 날이 다 되었나 보다. 그 싫던 장미가 이쁘네” 작년에 조카가 화분에 심은 장미를 들고 왔는데 마당에 심어두었더니 올해 꽃이 핀다고 하시며 엷은 미소를 짓는 엄마의 모습이 장미처럼 곱다.

“장미꽃 넌출넌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텅 빈 집 누가 올까/ 가시로 울을 치고// 뜰 안을/ 넘보던 햇빛/ 숨죽이는 한낮에// 한때는 울 엄마도/ 불꽃 같은 장미였다// 한 잎 한 잎 눈부셨던/ 빨간 루주 꽃잎 입술// 바람이/ 다 훔쳐 가고/ 휘인 등뼈 가시만// (김정 ‘장미꽃 엄마’)”

엄마도 아버지에게 한때는 어여쁜 장미였을 것이다. 장미를 가꾸고 화폭에 그 모습을 담던 아버지의 예술적 고독이 장미처럼 붉었으리라. 우리에게 엄마는 영원한 장미이다. “빨간 루주 꽃잎 입술”은 바람인 자식들로 인해 다 지워지고 “휘인 등뼈 가시”만 남았다 하더라도 엄마는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또 해마다 용기 내어 환하고 붉게 웃어주는 장미이다. 집 울타리에 점점이 핀 덩굴장미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더욱 붉고 애틋하다.

“밤새 한 걱정인가,/ 담벼락이 온통 붉다// 흘림체로 번져있는 글자 이어 붙이면//어머니/ 생전 잔소리/ 만져질 듯 생생하다// (황외순 ‘장미’)”

‘담벼락이 온통 붉은’ 엄마의 잔소리를 지금도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그 생생한 잔소리를 더 오래 건강하게 듣고 싶어 100송이 붉은 장미를 안고 엄마에게 가는 오월, 따뜻한 바람 한줄기 장미 꽃잎에 앉는다.

시조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3. 3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4. 4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5. 5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6. 6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7. 7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8. 8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9. 9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10. 10“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5. 5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8. 8[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9. 9[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10. 10‘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7. 7“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주민번호 대량 유출 빈번, 최근 6년 505만 건 털려…‘온라인 번호’는 278만 건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3. 3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8. 8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논란의 AG
상표권 알박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중수청·공소청 혼란 땐 수정 보완 주저 말아야
북 미사일 위협 속 ‘빈총 경계’ 안보 불안 키워선 안 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