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김세연 의원은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보수가 집중해야 할 과제로 기본소득을 꼽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 일자리와 소득을 기본소득으로 채울 수밖에 없으므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규모와 기능이 줄어들 것이므로 정부 지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기본소득을 포함해 노동과 복지 시스템의 큰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시행했다. ‘청년기본소득 조례’(2018년 11월)에 근거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들에게 지역화폐로 분기마다 25만 원씩 총 1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재난기본소득 조례’(2020년 4월)를 통해 도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지급했다. 최근에는 농민 모두에게 1인당 일정액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키로 하고 관련 용역을 공고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두 정치인이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제도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첫째, 보편성이다.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둘째, 무조건성이다. 근로 등의 조건이나 심사 없이 지급한다. 셋째, 개별성이다.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한다. 넷째, 정기성이다. 지속적으로 지급한다. 다섯째, 충분성이다. 기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지급한다. 이런 요건을 모두 갖춰야 기본소득이다.
이들 요건 중 둘째와 다섯째를 주목해보자. 무조건성은 생산연령인구에게 소득수준·고용상태·근로의사 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충분성은 ‘완전기본소득’의 핵심 요건인데,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똑같이 나눠주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GDP를 2000조 원으로 간주하면, 이것의 25%는 500조 원이다. 5200만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월 80만 원인데, 1인 가구의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52.7만 원)와 주거급여(서울 26.6만 원, 광역시 17.9만 원)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
충분성 요건을 갖추려면 월 80만 원(1인당 GDP의 25%)을 지급해야 한다. 재원 마련이 어려우므로 중간 전략으로 월 30만~40만 원(1인당 GDP의 10~15%)을 지급하자는 ‘부분기본소득’이 제기됐다. 월 30만 원 정도를 지급하려면 GDP의 10%인 200조 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GDP의 20%, OECD 평균은 25%다. OECD 평균 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증세 여력은 GDP의 5%인 100조 원이다. 월 30만 원 부분기본소득의 경우, 100조 원 증세 외에 100조 원이 더 필요하다. 정부 재정 500조 원의 구조조정으로 마련하자는 게 기본소득의 구상이다.
보수적 부분기본소득 입장인 김세연 의원은 재정 500조 원의 구조조정으로 200조 원을 마련하자는 쪽이고, 진보적 부분기본소득 옹호자들은 100조 원은 증세로 나머지 100조 원은 재정 구조조정으로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완전이든 부분이든,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기본소득은 도입된 전례가 없다. 복지국가의 주요 정치 세력이 기본소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완전기본소득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모든 성인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300만 원), 어린이·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78만 원)을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유권자의 76.7%가 반대했다. 정치인은 모두 반대했다. 왜 기본소득을 반대할까?
첫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 원리를 거부하고 생산연령인구에게 무조건 현금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 보편적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가령, 실업의 경우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충분히 지급된다. 우리나라도 월 180만 원이 넘는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100조 원 증세에도 불구하고 월 30만 원에 불과해 필요 충족에 크게 못 미친다. 고소득자 등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줬기 때문에 필요 충족의 ‘복지 효과’가 작다.
둘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경제 효과’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은 사회적 위험에 처할 때라야 급여체계가 작동해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는 반면, 기본소득은 언제나 모두에게 소액이 똑같이 지급된다. 즉, 보편적 사회보장은 경기하강 때 한계소비성향이 큰 실업자와 경제적 약자들이 충분히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기조절 기제’가 작동하는 데 비해, 기본소득은 소비 진작 효과가 작고 경기조절 기능이 없다.
셋째,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기 때문이다. 어렵게 마련한 200조 원을 월 30만 원짜리 부분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것보다 보편적 사회보장에 투입하는 것이 소득재분배에 훨씬 유리하다. 이는 위험에 처할 확률이 경제사회적 약자에서 더 높고, 이들에게 보장과 지원이 주로 집중되는 보편적 복지 효과 때문이다.
OECD 평균 수준의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우리는 지금보다 연간 100조 원의 세금을 더 내고, 사회보험료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이 돈을 모두에게 소액으로 나눠주자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걸림돌이다. 특히 이재명 지사의 구상은 최악이다. 그의 청년·재난·농민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국토보유세에 근거한 월 3만 원 지급 구상도 기본소득과 무관하다. 소중한 정부 재정이 무조건적으로 뿌려질 뿐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엔 일자리의 수와 구성에 변화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역할이 모두의 통장에 월 30만~80만 원씩 기본소득을 송금하는 데 머무는 건 옳지 않다. 이럴 경우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 속에 대다수가 수동적이고 불행한 처지로 내몰릴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편적 사회안전망 확립과 사람의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서비스·직업훈련에 정부 지출을 늘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일자리 창출과 고용보장에 최선을 다하는 포용적 복지국가의 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