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체면에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어떻게 결재를 받으러 가냐고들 한답니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서 여성 처음으로 상공부 장관에 임명된 임영신(1899∼1977) 여사가 부임 사흘이 넘도록 인사는커녕 결재받으러 오는 사람조차 없어 출근길 운전기사에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박순천(1898~1983) 여사는 5선으로 제1야당 총재까지 지냈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비아냥을 수시로 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는지 14대 대선에도 출마했던 3선의 김옥선 여사는 2대 8 가르마에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영락없는 남자 모습으로 의정활동을 펼쳤다.
남성이 구축한 세계에 홀로 진입한 여성의 특징은 때론 성별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남자같이 당차고 기가 세다”는 말이 칭찬이던 시절이 오래 지속된 탓일지 모른다. 처음으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건 강금실 전 장관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옷차림부터 남달랐다. 여성 관료들이 무채색 계열 바지정장 차림이었다면 강 전 장관은 분홍이나 민트같은 밝고 화려한 색을 마다 않았다. 갈등을 빚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의 팔짱도 스스럼없이 꼈다. 검사와의 대화에 배석했을 땐 치마 정장을 입었다.
헌정사 73년 처음으로 여성 국회 부의장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약사 출신으로 30여년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4선 국회의원 고지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주인공이다. 이달말 형식적인 투표 절차가 남긴 했지만 다른 변수가 없는 한 6선의 박병석 국회의장 후보와 함께 의장단을 이뤄 21대 국회 전반기를 이끌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국무총리와 대통령에 이어 국회 부의장까지 첫 여성 시리즈의 계보도 잇는다.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팽팽한 기싸움 못지 않게 화려한 액세서리와 패션으로도 자주 주목받는다. 당당히 드러낸 여성성에 더 환호하는 건 여성이다. 아이슬란드에선 여성 의원이 국회에서 모유 수유를 하고, 뉴질랜드 총리는 딸을 데리고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세상이다. 여성은 고위직 진급이 어렵다는 ‘유리천장’, 어려울 때 여성을 해결사로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유리절벽’, 남성보다 오히려 승진이 빠른 여성을 빗댄 ‘유리엘리베이터’까지 모두 워킹 우먼의 고군분투가 소재다. 1대 국회에 1명 뿐이던 여성 국회의원은 21대에서 57명으로 불어났다. 분명 진보이긴 하지만 이제 겨우 몇걸음 나아갔다고 보는 게 맞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