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조건의 미세한 변화가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카오스 이론의 핵심이다. 카오스 이론은 복잡성, 비예측성을 토대로 한다. 현대 사회의 재난은 카오스 이론이 제시하는 복잡성·비예측성의 특징을 지녀 선형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비선형적이고 진화적인 과정으로 전개된다. 코로나19 또한 비선형적, 진화적으로 전개되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중국 우한의 기침 하나가 전 세계를 최악의 경제공황 상태로 만든 셈이다.
찰스 페로우는 ‘노멀 액시던트(Normal Accidents)’ 개념을 제시하며 현대와 같은 고도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효과적인 안전장치를 만든다 해도 위험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 사회의 기술적·조직적 시스템은 ‘복잡성’과 ‘꽉 짜인(tight coupling)’ 체계로 구성돼 있어 작은, 초기의 사고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재난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자연적 재난임에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붕괴 같은 2차적 재난을 일으켰다. 2017년 포항 지진, 2018년 폭염, 지난해 미세먼지는 하나의 자연적·사회적 재난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에 다양한 피해를 입혔다. 2020년 코로나19 또한 하나의 국가적 재난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의 재난은 복잡성·비예측성·비선형성을 토대로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미디어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미디어 수용자의 감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사람이 합리적 판단을 하는 데서 감정은 방해가 되는 요인 또는 주변부적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충동적인 감정보다 이성이 더 우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이는 서구의 합리적 인간관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감정보다 논리적 규칙, 확률적 계산 등 수치적 근거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최근 안토니오 다마지오를 비롯한 신경과학자가 사람은 모든 정보를 고려해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기억과 감정에 의존해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내면서 감정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공포 불안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은 나름의 논리와 패턴이 있다. 공포, 불안은 외적 위협이 불확실하거나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유발되고, 분노는 어떤 사건이 확실하거나 통제 가능하다고 여길 때 생긴다.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서 비롯되고 공감 동정의 맥락에서도 유발된다. 이 감정은 사람의 행동의도에도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불안, 슬픔은 위험 예방 행동의도에 영향을 미치고, 공포는 회피 행동의도에, 분노는 처벌 및 사회정치적 행동의도에 영향을 준다. 구체적 감정은 논리와 패턴을 토대로 유발되고, 이를 토대로 각각의 감정은 인간의 행동의도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런 감정은 재난 보도의 영향력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 초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차총회에서 로빈 나비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재난 보도와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 재난에 관한 예방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미디어 보도가 수용자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프레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재난 보도에서 유발된 불안, 슬픔은 예방 행동의도를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 수치 중심의 재난 보도보다 수용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재난 보도가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재난 보도가 수용자의 감정을 어떻게 틀(프레임) 짓는가’에 따라 해당 재난에 관한 행동 의도와 정책 지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린다. 이 시대에는 기존 이성적 위험 판단보다 감정 기반의 위험 판단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미국 심리학자 리사 펠드만 배렛이 주장한 대로, 모든 감정은 해당 사회의 가치관이 투영돼 있고 문화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은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근간을 둔 것이지만, 감정 기반 판단은 인간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비선형적이고 진화적인 뇌 속에 저장해온,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생존의 법칙일 수 있다. 이제 재난 보도는 미디어 수용자의 감정적 프레이밍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