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시철도에 한동안 지하철문고가 운영된 적이 있다. 출퇴근길 시민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역사마다 공짜 책을 비치한 것이다. 첫해인 1986년 28개 역사 50개 서가에 꽃힌 책은 80만권이나 됐다. 그러나 무료 문고 7년여 만에 책꽂이에 남은 책은 수백권으로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읽으려고 가져가선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은 것이다. 7만여권을 추가 비치했으나 또 대부분 사라졌다. 전남 구례의 운조루 고택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처럼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한 ‘사랑의 쌀독’도 한때 전국적으로 유행했으나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몇년전 유튜브에선 한국인의 양심 실험이라는 동영상이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서울 도시철도 열차 안에 100개의 선물꾸러미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었다. 물건이 이내 사라져 당일 저녁 최종 회수한 건 6개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반전이 일어났다. 81개가 지하철 유실물센터에서 발견된 것이다. 회수율 87%였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시대와 사람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요즘 곳곳에 무인 점포들이 들어서고 있다. 무인카페 무인빨래방 무인독서실 무인라면점에 이어 무인편의점과 무인아이스크림가게까지 생겼다. 이런 가게는 일부 프랜차이즈에서 계산만 키오스크(주문시스템)로 하는 단계를 훨씬 넘어선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고 계산도 손님이 직접 한다. 가게 안에는 사장은 물론 종업원도 없다. 대부분 24시간 영업이다. 사람만 없을 뿐 물건의 진열이나 개방 상태는 일반 상점과 다름이 없는데도 그렇다. 가게 안에 CCTV가 여러대 있어 손님들의 동태를 구석구석 비출 뿐이다. 도난 사고가 없진 않지만 이런 무인 점포의 증가 추세 자체가 절도로 인한 손실이 크지 않음을 증명한다.
무인 점포의 가장 큰 장점은 인건비 절약이다. 일부 가게 주인 얘기를 들어보면 손님들도 무인 시스템에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카드나 스마트폰 결제가 대중화돼 있어 자가 결제기 이용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다, 주인이나 종업원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물건을 고를 수 있어 오히려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거들고 있다. 무인 점포의 증가가 양심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는 방증인지, 인간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씁쓸한 단면인지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