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천국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현실이 고단할수록 영화가 빚어내는 ‘가상 행복’에 대한 욕망은 커진다. 1988년 이탈리아 출신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시네마천국’은 영화의 그런 미덕을 물 흐르듯 풀어냈다. 2차대전에서 아버지를 잃은 어린 토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정신적 아버지인 영사기사 알프레도 등등.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풋풋한 시칠리아인들이 그려내는 소극장 ‘시네마천국’의 풍경은 정겹고 아름답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단다.”(알프레도) “이 지긋지긋한 여름은 언제 끝나지? 영화라면 벌써 끝났을 텐데.”(청년 토토) 영화는 ‘혹독하고 잔인한’, ‘지긋지긋한 여름’ 같은 현실을 견딜 힘을 주는 영혼의 안식처다.
우리 국민의 영화 사랑은 ‘시네마천국’에 등장하는 시칠리아인들 못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체 관객은 전년 대비 4.8% 증가한 2억2668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인구 1인당 연평균 관람횟수도 4.37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큐멘터리를 뺀 대부분의 영화가 실재를 모사한 허구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거대한 가상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이렇게 가상이 실재를 대체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 그 결과물을 ‘시뮬라크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힘은 가상을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욕망이 지나쳤던 탓일까. 영화는 시뮬라크르(가상)이지만, 그동안 영화를 판매·소비하는 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이 직접 만나 어우러지는 실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영화제마저 가상세계로 이주해버렸다. 코로나 사태가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실증한 꼴이다. 28일부터 내달 6일까지 열리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무관객 영화제’로 치러진다. 앞서 가장 오래된 아방가르드 실험영화제인 미국 앤아버영화제가 지난 3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바 있다. 프랑스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온라인 개최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터라 오프라인 개최를 장담하기 어렵다. 오는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파로 출렁이던 영화의 바다가 유튜브 가상의 물결로 바뀌다니, 장자의 말처럼 인생은 나비 꿈인 걸까.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