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마시라. 이 그림은 정상적으로 인쇄됐다. 실수로 뒤집어진 게 아니다.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의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사물이든 풍경이든 인물이든 이렇게 거꾸로 된 그림으로 유명하다. 똑바로 그린 후 캔버스를 뒤집은 게 아니라 화가는 처음부터 대상을 거꾸로 그린다. 그의 아내를 그린 이 초상화 역시 인물이 뒤집어져 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왜 거꾸로 그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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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엘케1. |
본명 한스-게오르크 케른 대신 고향 이름을 선택한 바젤리츠는 1938년 구동독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태어났다. “나는 파괴된 질서, 파괴된 풍경, 파괴된 사람들, 파괴된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인한 파괴의 개념은 그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베를린예술대학에서 ‘사회정치적 미성숙’의 이유로 2학기 만에 제적당한 그는 1957년 서베를린의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서독으로 왔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4년 전이었다. 동독의 사회적 사실주의에도, 서독에서 유행하던 추상주의에도 동조하지 못했던 그는 1969년부터 대상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장 독특하고 결정적인 특징이 됐다.
이 그림은 같은 동독 출신인 아내 엘케를 그린 첫 초상화다. 비록 모델이 거꾸로 되어 있지만 갈색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등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뿌연 청회색으로 칠해진 배경과 한손으로 턱을 괴고 화면 밖을 응시하는 눈빛은 왠지 불안하고 우울해 보인다. 이 그림은 동서분단 시절, 이들 부부가 동독의 친구들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참고해 그린 것인데, 엘케는 당시 친구들을 만나 매우 기뻤지만 분단 상황을 의식하고 있어서 매우 힘들고 격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모델의 불안이나 우울함을 표현한 작품이라 볼 수는 없다. 바젤리츠는 그림 속 주제를 뒤집음으로써 내용의 해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대신 색채와 형상을 강조해 그림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대상을 거꾸로 그린다는 것은 화가가 속한 세계에 대한 저항이자 규칙과 질서의 부정이다. 또한 모든 관념과 관습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파괴를 통한 재창조라는 현대미술의 속성을 그는 일찌감치 간파하고 실천했다.
사실 거꾸로 된 그림은 관객을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그림을 똑바로 세우면 어떨까? 놀랍게도 더 이상한 그림이 된다. 결국 화가는 세상을 거꾸로 보는 데 익숙해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거꾸로 본다는 건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거다. 내 관점이 틀릴 수 있다는 인정의 시작이다. 세상 일이 이해가 안 될 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뒤집어 바라보고 생각해 보는 것. 어지러운 세상 보기의 지혜가 아닐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