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사람들의 여행 중 상업적인 목적을 제외하고 주요한 게 순례 여행이었다. 유럽 각지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이나 로마, 지금도 많은 이가 찾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드콤포스텔라를 찾았다. 그중 가장 인기 있던 순례지는 예루살렘이었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모여드는 항구에는 편한 옷과 사막의 모래가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화, 갈증을 풀어줄 설탕음료, 페스트에 대비한 환약 등 다양한 물품을 파는 상점이 성업했다. 또 여행사와 해운회사는 식사와 음료, 순례지 주변 관광과 당나귀 대여료까지 포함하는 왕복여행 상품을 팔았다.

순례자들이 갤리선을 타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남쪽에 있는 자파까지 가는 데는 8~10주가 걸렸다. 도착한다고 해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페스트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고 돌던 당시에 ‘검역’은 필수였다. 순례자들은 항구의 지하감옥에서 2주 동안 격리되었다. 여기서 발병하지 않아야 그 후 현지 안내자가 순례자 행렬을 성지로 인도했다. 순례자들이 겪은 상황은 21세기의 여행자들이 겪는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순례여행은 오늘날 패키지 관광과 흡사하고 자파에서의 격리는 400~500년이 지난 요즘 국경을 넘는 여행자들이 겪는 2주간의 자가격리와 마찬가지다.

대략 지금부터 40만~7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역사는 중단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선사 시대에나 중세에나 지금까지도 여행은 ‘쉽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즐거움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포장의 도로는 비가 많이 내리면 진창이 되거나 수로로 변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건강증명서도 필요했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보통 사람의 장거리 비행은 좁은 좌석 탓에 불편하기만 하다. 때로는 심하게 덜컹거리기까지 한다. 코로나19 탓에 검역을 감수하고 국경을 넘는 한가로운 여행은 지탄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이 모든 불편과 시간·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도 여행이 부단하게 이뤄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예상할 수 있는 건 감정적 위로와 지식욕 충족 등 여행의 다양한 매력 때문이다. 성지순례는 영적인 충만함은 물론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일이었고 17세기 유럽 신사의 여행 그랜드 투어는 귀족 계급의 교육이자 유희였다. 이후로도 여행은 나라를 오가며, 이후에는 대륙을 오가며 다양한 목적과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행해진다.

도보에서 말, 마차, 자동차, 기차를 지나 항공기로 이어진 이동수단 발달에 따라 여행 패턴은 큰 변화를 겪었다. 급기야 이제 우주선까지 등장했다. 미국의 앨런 머스크가 창업한 민간기업 스페이스X가 유인 우주선을 우주정거장까지 올려보낸 데 이어 일반 관광객을 우주에 보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스페이스X는 2023년에 달을 여행할 첫 여행객을 선정해 놓았고 2024년에는 승객 100명을 태워 화성 우주 관광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왕복 비행시간만 3년, 비용도 6억 원이 넘는 ‘여행’이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큰 위기와 변화를 맞은 분야 중 하나가 여행이다. 여행업계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 예전 같은 해외여행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들리고 국내 여행도 이전과는 다른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행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란 전망은 여러 곳에서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비대면) 트렌드 속에서 사람으로 북적이는 유명 문화유적이나 대도시 여행 대신 상대적으로 한적한 소도시 도보 여행이나 자연을 찾는 트레킹에 나서는 이가 늘 것으로 보는 전망이 있다. 그런 한편으로 우주여행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여행도 등장한다.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사회적 변화는 여행의 장애물로 작용했지만,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낯선 장소에 대한 호기심, 가보지 않은 땅을 찾는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행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멀리는 우주에, 가까이는 주변 숲길에 새로운 기회가 숨어 있다.

생활레포츠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