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잘 하고 와.” 여든이 넘은 남편의 배웅이다.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백팩보다 조금 더 큰 손가방을 들고 마음이 급한지 코트를 입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기분이 묘했다. 대학에 있는 평생교육원에서 이것저것 배운다고 캠퍼스를 다닐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 가슴을 차고 올랐다. 늦은 나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도전이 늦깎이 삶에 찾아든 것이다.
내 나이 일흔 하나. 세계는 코로나19 악재로 먹구름에 시달리는 시국이다. 하루 몇백 명씩 확진자가 생기고, 수천 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의료진이 부족하고, 병실이 없어 바깥 공원과 운동장까지 텐트를 치는 곳도 생겼다. 미세먼지보다 작은 균이 세계를 돌면서 인간 생명을 허무하게 짓밟는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황폐해진 마음 밭에 꽃씨를 뿌리려고 대학에 입학했다. 아름답게 피워 알알이 영근 열매를 바라는 열정은 나이에 억압되지 않았다. 미래를 바라보는 꿈이 있기에 어려운 시국에도 용기를 내 대학 캠퍼스 앞에 서서 큰 호흡을 한다.
마스크를 쓰고 정문에 들어섰다. 나뿐만 아니다. 전염병 탓에 모두 마스크를 썼다. 외계에서 온 사람같이 하얀 천이 얼굴 반을 가려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사람인데 반 남은 콧등과 눈밖에 볼 수 없으니 젊은지 늙었는지 구별이 어렵다.
막걸리를 전문으로 만들 꿈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학도의 꿈이다. 그래서인지 벅찬 가슴은 나이에 관계없이 부푼 꿈으로 요동친다. 칠십 나이에 큰 가방 들고 입학한다고 좋아하는 마음과 눈빛은 대학 캠퍼스 곳곳을 살펴본다. 대학 수업도 산처럼 높으며 학교 캠퍼스처럼 넓을 것이다. 그 높고 높은 건물에 내가 들어가 지식을 익힌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학교마다 개학도 못 하고 입학도 미뤘는데, 만학도의 부푼 마음을 헤아려 대학교에서 먼저 입학을 시킨 것 같다.
내가 입학한 양조발효과는 뜻밖에 젊은 남학생이 많다. 자영업을 하는 중년 신사분도 있고, 현직 교수님도 발효의 매력으로 지원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비즈니스의 꿈으로 진학한 것 같다. 예상대로 내 나이가 제일 많다. 하지만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늙었다고 무시하고 외면할까 걱정했는데 모두 큰누나 큰언니로 도와준다.
남들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학교에 왜 가냐고 묻는다. 건강을 챙기면서 그 돈으로 맛있는 것 사 먹고 여행이나 다니지 무엇 하러 머리 아프게 다시 공부하느냐고 질책한다. 그들의 말이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인지 내 속마음까지 새겨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여유로운 부모님 품 안에서 차곡차곡 학업을 마쳤지만, 나는 언감생심 그런 공부를 하지 못했다. 젊어 다 이루지 못한 학업이 내 걸어가는 길에 돌뿌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 깊숙이 보이지 않은 거미줄이 되어 항상 걸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만 보면, 배우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리곤 했다.
덕분에 희망이 이루어졌다. 소망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참된 말대로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십여 년 전, 어머니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했다. 낮에 일하면서 오후에 시간을 내어 열심히 다닌 덕에 학업의 밑거름이 됐다. 나아가 지금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얻어 미래까지 설계한다. 녹슨 머리만 닦아준다면, 칠십이든 팔십이든 무엇이든 다 할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이 태산이다. 내 머리에 잠자고 있는 뇌를 어떤 비로 씻어낼 것인가. 소낙비가 깨끗이 씻어내려 한마디 들으면 두 마디를 알아듣고 두 마디를 들으면 세 마디를 기억할 수 있는 총명한 지혜가 따라주기 바랄 뿐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반의반이라도 충전되지 않을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언젠가는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 밝은 글눈을 틔우지 않을까.
나이에 관계를 두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 첫발 내딛듯 한 발 한 발 다가가 씨앗을 건져 올릴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에 걸린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그 빈자리를 틈틈이 익힌 지식과 지혜로 채울 것이다. 내 절뚝거리는 걸음이 부지런히 걸어간다. 강의실 책상에 놓인 두꺼운 책을 향해.
동의과학대 양조발효과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