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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누가 바람과 함께 사라질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11 19:51:0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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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가 없어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을 눌린 채 절규한 말이다. 구급차에 실려 간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과 폭력에 대한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이런 숨 막힐 듯한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건 처리에 또다시 미숙함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사태에 미숙하게 대처하면서 이 초미세 바이러스의 공격에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플로이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정치지도자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치명적인’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큰코 다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법하다. 다른 나라 정치지도자이지만, 잘 분석해서 반면교사로 삼아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이른바 ‘스트롱맨 이미지’의 대표 주자 격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그를 벤치마킹하려는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트롱맨 코스프레하는 정치인이 있다.

이번에도 그는 군대까지 동원해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자 했다. 한 시민은 그가 “왕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최고 권력을 갖고 있음을 아주 잘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권력과 폭력은 백짓장 한 장 차이이다. 필요한 권력이 무모한 폭력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고 그렇게 되면 통제가 거의 불능해진다.

이런 현상은 플로이드 사건의 현장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플로이드를 체포할 때는 공적 권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폭력으로 변해 살인을 하게 된 것이다. 권력이 폭력으로 전이하는 현상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대한 정치 사회적 변동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든 다층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권력(power)이란 말은 ‘할 수 있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위정자의 권력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종종 권력자는 이를 ‘뭐든 할 수 있다’로 인식해 그 실행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부터 신하는 왕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언하지 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언하라는 금언이 있는 이유다. 오늘날 국민은 대통령에게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요구하고 있다.

‘권력 의식’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측면은 ‘차별 의식’인 것 같다. 그는 차별 의식을 노골적으로 활용하여 덕을 보기도 했다. 대체로 선거전략에서 그러했다. 그는 골수 지지자들을 확실히 붙잡아 두기 위해 그들 이외의 유권자는 노골적으로 차별해왔다. 주로 중산층 이하 백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전략을 쓰는데, 차기 대선에서도 이 전략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확실한 내 편’이 관리하기도 좋고 숫자를 계산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이상은 거의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차별 의식이다.

다른 한편 트럼프의 차별 의식은 은밀한 성격 또한 띤다. 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왔다 사라지는데, 이는 지나쳐 보내기 쉽지만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간단히 보도됐지만, 별로 이슈가 되지 않았던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기 멕시코 국경에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한 미국식 ‘만리장성’을 쌓던 때였다. 그는 온갖 부정적 단어를 써가며 이민자를 공격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어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행사에서 맥시코계 이민자 출신 경찰관의 연설을 듣고는 그에게 이런 칭찬의 말을 했다. “영어 잘하네!” 이것이 칭찬이 아니라 모욕인지도 몰랐단 말인가. 그랬을 것 같다. 무릇 잠재적 차별 의식이란 온갖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차곡차곡 쌓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우리와 아주 밀접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중요 부문 수상을 한 직후, 그는 즉각 불만 또는 반감을 드러냈다(그의 차별 의식은 특별한 인종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기편이 아니면 인종이든, 나라든, 작품이든 아이러니하게도 ‘무차별적’인 것 같다). 그러면서 요즘은 어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 없냐고 물었다.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영화사에서 명화로 남아 있다. 4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에도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원작인 마거릿 미첼의 소설은 1936년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탐미주의 시대의 시인 어니스트 다우슨이 ‘사랑의 상실’을 노래한 시구에서 따온 제목도 성공적이었다. 다만 소설에서 상실의 아픔을 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대농장의 삶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 대농장의 현실인 ‘흑인 노예’ 문제는 이야기 주제는 아니지만, 작품의 정치·사회·문명적 맥락을 이루고 있었다. 1852년 출판된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은 노예제의 비참함을 고발함으로써 반노예제 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에 맞서 이른바 ’안티 톰(Anti-Tom) 문학’ 또한 활성화했는데, 미첼의 작품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장르의 작품은 농장주인의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흑인 노예는 온순하고 백인을 모시고 사는 삶에서 혜택을 받아 행복감마저 느끼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항거하고 시위하는 모습은 결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래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골수 지지자 결집 전략이 또 먹힐 수도 있다. 현직 대통령이 연임하는 전통의 덕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와 플로이드 사건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오만, 편견, 증오, 무엇보다도 차별 의식을 ‘정화(淨化)의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지 않는다면, 민중의 바람이 그를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할지 모른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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