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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질본 승격 논란이 남긴 것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안, 우여곡절 끝 수정됐지만 관료주의 병폐 민낯 보여

사태 일단락과는 별개로 근본적인 성찰 뒤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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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은 현장을 무시한 관료주의 병폐의 심각성이다. 사태 초기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원칙적인 매뉴얼에만 집착하며 중요한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로 지휘본부가 격상됐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이후 발간된 메르스 백서는 이를 포함한 다양한 문제점을 적시하며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컨트롤타워로서 질본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질본을 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 사태가 끝난 뒤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는 등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청 승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인 질본의 청 승격은 사실 해묵은 과제였다. 2009년 신종플루 등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할 때마다 거론됐던 사안이다. 하지만 한바탕 홍역이 끝나고 나면 이내 잊혀졌다. 청 승격 자체가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해도, 진작 성사됐더라면 이후 감염병 대처에서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메르스 사태 때 징계를 받았지만 전문성이 탁월한 정은경 본부장을 발탁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마저의 변화도 없었더라면 코로나19 사태에서 ‘K방역’은커녕 또 방역 후진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코로나 대유행은 질본의 청 승격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줬다. 문 대통령 또한 지난달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논의가 구체화됐다. 10여 년이나 끌어온 숙제를 이 참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정부는 곧바로 반응했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가 질본을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행안부는 “질병관리청이 감염병과 관련한 정책 및 집행의 실질적 권한을 갖게 된다”며 “전문성과 독립성이 향상되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게 돼 감염병 대응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행안부 설명대로 이 조치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질병관리청에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과 조직 운영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청장이 인사권을 갖게 됨으로써 행정관료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는 겉으로만 그럴듯할 뿐 또다른 함정이 숨어 있었다. 현재 질본에 소속된 국립보건연구원을 떼내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원과 예산이 대폭 줄어든다. 예산권과 인사권을 준다면서 감염병 예방과 대응에 필수적인 연구기능을 빼간다면 질병관리청이 컨트롤타워는커녕 단순한 ‘방역청’으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손발이 잘린 무늬만 청 승격이라는 비판이다.

역시 행정 관료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질본의 청 승격 문제가 10여 년이나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 자신들의 밥그릇을 내놓기 싫다는 얘기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대통령 지시로 그나마 개편안을 내놓긴 했지만 그들에게 감염병 대응 역량이니,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질본을 위하는 척하면서 행안부·복지부가 실익을 챙겼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은 관료주의의 병폐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결국 당정청은 국립보건연구원을 승격되는 질병관리청 산하에 존치하는 새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어제 밝혔다. 이로써 질본의 청 승격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 정리되는 모양새다. 다행스럽긴 하나, 대통령까지 나서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을 사안인지 유감스럽다. 첫 개편안의 문제점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청와대와 여당 또한 그만큼 무신경했다는 이야기여서다. ‘K방역’을 자랑하기에만 바빴을 뿐, 그 주역인 질본의 역할이 향후 어떻게 자리매김돼야 하느냐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던 셈이다.

질병관리청이 생기고 국립보건연구원을 산하에 그대로 둔다고 해서 ‘무늬만 승격’이라는 논란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의문이다.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드러난 뿌리 깊은 관료주의가 앞으로도 여전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따라서 이번 개편과는 별개로 ‘K방역’의 우수성에만 빠져 혹시 그간 가려졌을지 모를 관료주의의 폐해 등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져야 마땅하다. 어떻게 보면 ‘K방역’은 질병관리청이 실질적인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져야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번갯불에 콩 볶듯, 조직을 개편했다고 손을 털 일이 아니다. 왜 이 사안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끌어왔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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