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손편지의 위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18 19:32:41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때 이른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장 그르니에는 이런 햇살을 보며 다음과 같은 산문을 썼다. “햇볕이 가득 내리쪼이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은 어찌하여 상쾌한 풍경이라 말하는가? 태양은 세상을 공백 상태로 만들어 놓아 생명이 있는 존재는 저 자신의 모습과―아무런 기댈 곳도 없이―대면하게 된다.” 백일(白日)은 오히려 상쾌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이유인즉 태양으로 인해 존재들이 가식 없이 자신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햇살을 피하려는 인파는 점점 더 짙어지는 나무 그늘로 들어가게 된다. 도심 곳곳에서는 분수가 물을 세차게 내뿜어 청량감을 안겨준다. 며칠 전 날이 덥다며 한 지인이 선물을 보내왔다. 부채였다. 요즘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지만, 막상 부채를 들고 다니며 흔드니 바람이 일어나 금방 땀을 식혀준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부채만큼 그 활용이 떨어진 것 가운데 하나는 손편지가 아닐까 싶다. 굳이 손편지가 아니더라도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졌다. 아무래도 전자우편을 이용한다면 빠르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다. 삐뚤빼뚤 손글씨를 쓰거나 우체국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있다. 그러나 손편지가 가져다주는 정감은 무시하기 어렵다. 나는 가끔 지인들로부터 손편지를 받는다. 대개는 새로 펴낸 시집을 부치면 감사의 마음을 담은 회신으로 손편지를 보내온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오는 지인들도 있다. 나는 내게 보내온 지인들의 손편지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꺼내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그 손편지는 또다시 그 어떤 샘물 같은 위안을 안겨준다. 다시 읽지 않고 용건만 확인한 후 대개는 삭제하게 되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보다는 이른바 유효기간이 훨씬 긴 셈이다.

기억에 남는 손편지 가운데 하나는 군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어머니께서 보내온 편지였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어머니의 편지를 뜨거운 눈물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이 손편지의 위력을 알기에 나는 가끔 가족들에게 짧은 손편지를 쓴다. 다소는 형식적인 문장들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속내를 솔직하게, 그리고 소상하게 쓰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러한 손편지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좀 써보는 기획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 최근에 있었다. 한 도시의 시립도서관에서 온 제안이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분이 힘든 시기를 겪는 만큼 작가가 쓴 손편지가 독자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독자가 작가에게 자기 사연을 적어 편지를 보내면 작가가 손글씨로 직접 답장을 보내드리는 식이었다. 기획 프로그램 이름은 ‘당신을 위한 손편지, 작가가 건네는 은밀한 위로’였다. 이해인 수녀님과 백세희 작가가 참여한다고 했다. 나도 흔쾌히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손편지의 위로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시 ‘슬이’를 떠올렸다. “사람이 꽃같네/ 옛말// 오늘 나는/ 고쳐 말하네// 꽃이/ 사람이 되었네”라는 짧은 시였다. 이 시는 꽃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꽃 그 자체가 곧 사람이라고 말한다. 보다 사람의 존재를 귀하게 보는 셈이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 어떤 일을, 고통을 덜어주는 그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무척 소중하다. 불교의 경전 ‘유마경’에서 “자기가 병들었을 때를 견주어 타인이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 환자를 애민히 여겨라”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손편지를 통해 내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경감시켜줄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다만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아무도 조언을 바라지 않는다. 사실(고통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전인 시인은 시 ‘허공’에서 “네가 있어 나무는 나무가 된다// 네가 있어 바람은 제 길을 간다// 네가 있어 비로소 온전하게 되는// 앞뒤 툭 터져// 시퍼보이는”이라고 썼다. ‘시퍼보이는’은 만만하게 보인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다. 허공이 있어 나무는 나무가 되고, 허공이 있어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 곁에 있어 비로소 온전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내가 손편지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조언의 차원이 아니라 나무 곁에 있는 허공이 되는 것, 바람에게 길을 내주는 허공이 되는 일일 뿐이다. 물론 이것만을 잘하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가령 우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가로채고 참견하고 부정하곤 한다. 그 사람이 말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게 해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한다. 허공이 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고통이 있다면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일도 필요하다.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문장을 썼다.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 걷고 싶으니까 걷는다. 그러면 걷는 것이 목적이 된다. 생각하고 싶으니까 생각한다.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걷거나 생각하는 것은 보행과 사색의 타락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본래의 활동 이외에 어떤 목적을 세워서 활동하는 것은 활동의 타락이 된다.” 이 문장들에도 자기 존재의 목적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당신을 위한 손편지, 작가가 건네는 은밀한 위로’ 프로그램을 통해 내게 사연을 보내온 독자에게 답장으로 내가 손편지를 보낼 때에 어떤 문구를 꼭 써넣을지도 생각해보고 있다. 염두에 두고 있는 하나의 문구는 ‘생이여! 한껏 발 쭉 뻗어라’이다. 이 문구는 언젠가 읽은 시구이지만, 위로라는 것, 그것이 하는 가장 큰 일은 발을 뻗을 기회와 공간을, 쉴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7. 7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8. 8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9. 9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10. 10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1. 1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2. 2부산시의회, 교통공사·시설공단 대표 후보 ‘부적격’ 의견
  3. 3[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MDL 지뢰 폭발 사건은 ‘도발’…北 정권 행위 강력 규탄”
  4. 4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5. 5외모·학력차별…민간도 공공도 불공정 채용
  6. 6백종헌 “부산대병원이 7년째 권역센터 빠진게 정상인가” 질타
  7. 7[2026 국감 브리핑] 자격유지검사 않는 고령운수자 1400명
  8. 8[속보] 김여정, 정부 대북 의료장비 지원 방침에 “지뢰 사고 조작 뒤 또다른 광대극…변종된 정치적 도발”
  9. 9박성훈, 부산 보훈의료 공백 해소 물꼬…보훈부 장관 “전면 조사해 대책 마련”
  10. 10'이종석 방미 거부' 부인했지만…한미 정보당국간 불협화음 여전
  1. 1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2. 2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3. 3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 시대…‘머무는 관광’으로 질적 도약 모색
  5. 5누리호 5차 발사…군집위성 5기 모두 교신 성공(종합)
  6. 6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107조…글로벌 빅테크 첫 기록(종합)
  7. 7홈플러스, 희망퇴직 돌입…MBK 경영권도 사라져
  8. 8부울경 산학 기술력으로 누리호 성공 쐈다
  9. 9근무시간에 사주 상담…HUG 직원 면직 처분
  10. 10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0조 시대’ 임박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7. 7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8. 8[뭐라노] 금정구가 인구감소지역이라고?
  9. 9금융기관 해킹 IP 상당수 ‘세탁용’
  10. 10부산시, 민선9기 공약 122개 실천계획 확정…총사업비 35조5250억 원
  1. 1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2. 2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3. 3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4. 4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5. 5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6. 6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7. 7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0. 10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유튜브 쇼츠 정치
통행료 면제 명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누리호의 도전, 역대 최다 15기 위성 싣고 우주로
국제기구 인증보다 주민 체감 효과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