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 광주에선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제45차 총회가 열렸다. 이날 시도지사들은 ‘제21대 국회에 바라는 시도지사 대국회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지방자치법, 중앙지방협력회의법, 자치경찰제 도입 등 지방분권 관련 주요 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관련 법안을 21대에서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정권보다 지방분권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문재인 정부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았고 20대 국회 또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새 국회 출범을 앞둔 마당에 시도지사들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틀 뒤면 이들 민선 7기 시도지사들이 반환점을 돌고 임기 후반을 맞는다. 단체장마다 나름대로 전반기 시·도정을 평가하며 후반기를 위해 마음을 다잡을 시점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가 지난 5월 한 목소리를 냈던 지방분권 문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굳이 이날 성명서가 아니더라도 각 단체장들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해 저마다의 주장을 펼쳐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날 성명 내용처럼 임기 후반기 이들이 어떻게 힘을 모아 이를 제대로 이뤄낼지에 관심이 쏠린다.
동남권의 주축인 부산으로서도 중차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시정 전반기를 이끈 시장은 불미스럽게 사퇴했다. 변성완 권한대행이 나름대로 의욕을 보이고 있긴 해도, 시정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권한대행체제가 관리형에 머물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당장 시급한 현안 처리에도 급급한데, 지속적으로 지방분권 이슈를 제기하고 이를 이끌어갈 여력이 있겠느냐는 우려다. 거기에다 권한대행 또한 1년 임기다. 후임 시장이 선출되더라도 남은 1년 동안 이 문제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웃 동네인 경남과 울산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두 단체장 모두 각각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선거 개입’ 사건 등에 연루된 까닭이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올 하반기 항소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고, 송철호 울산시장도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재판과 관련 없이 시정에 충실하겠다고 하지만, 말과는 달리 적극적 행정을 펼치기에 걸림돌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친형 강제 입원’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대법원 판결이 머지 않았다. 이처럼 주요 시도 단체장이 자신들 문제로 삐걱대고 있으니, 임기 후반 지방분권 이슈가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없지 않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 또한 임기 초와 달리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사안에 발을 빼는 모양새다. 4·15 총선 전까지만 해도 2차 공공기관 이전이 곧 이뤄질 것처럼 약속하더니 선거가 끝나자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딴소리다. 리쇼어링(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국내 복귀)을 장려한다며 수도권 규제 완화책도 내놓았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활성화 대책이라고 하지만, 마치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거침없는 행보다. 국가적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비수도권을 모두 죽이는 근시안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코로나 사태의 피해가 장기화하면서 이런 논리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란 점이다.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상당수는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물론 국가 재정상 불가피한 점이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피해가 비수도권에만 전가되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명분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게 임기 말에 접어든 문 정부의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이라면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틀 뒤면 민선 7기 시도지사들의 임기는 반환점을 돌지만,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별다른 진전도 없이 원점을 맴돌고 있다. 별 새삼스럽지도 않은 지난 5월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 그나마 주목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한 문 정부의 의지는 퇴색했고, 이를 이슈화해야 할 일부 단체장들의 입지도 흔들리는 등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지역민 입장에선 단체장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고, 그들 또한 그 신뢰를 저버려선 안 된다. 이날 시도지사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서가 여느 때와 같은 형식적인 것이라면 임기 후반에도 별 기대할 건 없다. 때 되면 만나 사진 찍고 실행력 없는 성명서 하나 남기는 협의회만 이어갈 게 아니라 이번 만큼은 뭔가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